구스타프 말러 / 옌스 말테 피셔 지음, 이정하 옮김 / 을유문화사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가 쓴 열 편의 교향곡에 우주의 질서가 담겨 있다.

전 세계적 말러붐은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말러리안(말러 추종자)이라면 교감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의 교향곡을 들으면 자기 성찰적인 숭고한 담론과 따스한 정경, 코즈모폴리턴적 매력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책은 교향곡에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오는 음악적 에너지를 쏟아부었을 뿐 아니라 정치적인 인물이기도 했던 말러의 삶을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짚어 나간다.

말러는 볼품없고 못생기고, 허약했다는 관념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실제로 그는 평생을 편두통, 치질, 인후염, 심장부전 등 온갖 질병에 시달렸다. 하지만 저자는 그와 가까웠던 지인들의 시각을 통해 산책, 수영, 산행 등으로 다져진 호리호리하면서도 균형 잡힌 몸매를 가진 모습으로 말러를 그린다.

우울하고 심각한 일 중독자로 전해진 말러는 인간과 동물에 대해 연민과 동정을 가진 가슴 따뜻한 사람이었고, 날카로운 위트를 즐길 줄 알았다. 말러는 엄격한 하루 일과를 지킨 사람으로 집과 직장만을 시계추처럼 오간 사람으로 알려졌다.

여름 휴가 기간에는 오두막에만 틀어박혀 작곡에만 집중함으로써 수도자적인 삶을 살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는 “말러가 음악계의 권력게임에 능한 정치적 인물”이었다는 점을 들춰낸다. 지휘자 자리를 얻기 위해 나이를 속이는 신상 정보 조작도 마다하지 않았고, 빈 궁정 오페라 극장에 초빙되기 위해 연줄을 총동원하고 가톨릭으로 개종하기까지 했다.

책에 따르면 말러는 교향곡 3번을 대부분 슈타인바흐의 오두막에서 썼는데 횔렌게비어게의 자연에서 가져온 소재들을 채용했다. 지휘자 브루노 발터는 이렇게 썼다. “말러의 집으로 가는 도중에 내 시선이 횔렌게비어게에 닿았다. 그때 말러가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자세히 볼 필요가 전혀 없어요. 내가 이미 몽땅 작곡해 버렸으니까.”

책은 말러의 음악뿐 아니라 유럽의 정치, 사회, 예술적 맥락 속에서 말러의 삶을 깊이있게 분석했다. 말러가 겪었던 절정의 순간과 파국의 순간, 광명의 순간과 암흑의 순간이 그의 2번 교향곡 ‘부활’처럼 책 속에서 되살아났다.

“전통은 주먹구구식 행태”라는 말러의 명언은 빈 궁정 오페라 극장 소속 오케스트라의 무사안일과 구태를 일갈하고 있다. 이 평전은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오는 시대의 위대한 음악가 말러의 음악세계가 마치 거대한 산맥처럼 웅혼하게 펼쳐지는 책이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