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기모노를 입고 벚꽃길을 산책하는 일본여성들을 그린 일본 민화. 페이퍼로드 제공

일본인이란 무엇인가 / 야마모토 시치헤이 지음, 고경문 옮김 / 페이퍼로드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태로 일본이 제2의 패전을 맞이했다는 분석이 있지만 일본은 만만치 않은 회복력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의 저력을 보려면 일본의 뿌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저자는 일본인에게조차 생소한 일본의 심해를 탐색해 들어간다. 그는 일본인을 일컬어 천연덕스럽게 ‘동아시아에서 가장 후졌다’고 말할 정도로 특이한 인물이다. 일본문화론의 대가인 저자는 책에서 일본에 대한 선입견과 오해를 걷어냈다. 그 스펙트럼은 일본의 문자, 신화, 종교, 정치, 화폐제도, 무역, 경제, 법체계, 철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선사시대부터 이어져 온 일본문화와 일본인의 행동원리를 총체적으로 조명하고 부감했다.

일본은 모방대국인가. 저자는 일본은 모방대국이지만 그 바탕에는 구조와 원리를 꿰뚫고 있는 기술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일본인이 ‘모방의 천재’라는 별명을 갖게 된 배후에는 세계 유일의 비정시법 시계(계절에 따른 밤낮의 길이 변화를 적용한 시계)를 만든 시계공들이 있었다. 책에 따르면 1862년 시계공인 오노 노리치카(大野規周)는 네덜란드로 건너가 5년 동안 항해 기계와 측량 기계 만드는 기술 등을 모조리 배워 왔다. 이미 시계를 만드는 기술이 발달해 있었기 때문에 당시 오노 노리치카 같은 시계공들은 증기선을 보기만 하고도 구조를 파악해 증기 기관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한자, 율령 제도, 불교 등 외부의 문화는 일본에 도입되는 순간 ‘일본화’하는 경향이 있었다. 저자는 이를 두고 외부의 문화와 토착 문화의 ‘공명’이라는 표현을 썼다. 한자를 들여와 변형하고 보완한 가나 문자를 발명하면서, 일본은 서민들이 알기 쉬운 언어로 법체계를 공고히 하는 데 성공했다.

저자는 속내를 알 수 없는 일본인, 계산적이면서도 유럽을 동경하는 나라 등의 편견도 나름의 시각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는 일본을 신구가 교차하는 복합문화의 나라라고 정의했다. 일본인들은 무사 정권 내부의 분열과 각지의 농민, 상인 등이 꾀하는 반란 등으로 언제 지도자가 바뀔지 모른다는 불안과 일종의 종말 감각을 갖고 살았다. 그런 와중에서도 신화의 시대로부터 내려온 ‘천황’의 정통성을 지켜내고 있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1500년 전 모습 그대로인 이세 신궁이 초고층빌딩과 공존하는 나라라는 것이다. 신궁에서는 고대 방법 그대로 소금과 제기를 만들어 제사를 지낸다. 그는 또 다른 유명한 별명인 일본인 경제동물론에 대해서도 그 기원을 추적해 들어간다. 일본의 학자들은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와는 달리 사대부 집안이 아닌 상인 출신이 많았다는 것. 18세기의 학자 혼다 도시아키(本多利明)는 “천하를 손에 넣은 은의 탕왕과 주의 무왕을 이상으로 삼는 일은 미친 짓”이라며 실학을 제창했다.

일본 여성에게는 제대로 권리가 없다는 통념도 여지없이 무너트린다. “가마쿠라 시대(1185∼1333)의 상속법에 따르면 자녀가 없는 처에게도 상속권이 보장됐다. 심지어 양자로 들인 자식에게 재산을 상속할 수도 있었다. 또한 ‘자식의 성별이 달라도 부모의 은혜는 같다’고 해 아들딸 구별 없이 균등하게 재산을 상속했다. 이를 통해 불과 13세기에도 일본의 여성 인권은 남성 못지않았음을 알 수 있다.”

책은 지금의 일본이 기적이나 마술 같은 방법으로 성장한 것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일본인의 진면목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있는 이 책은 일본에 호기심 많은 독자들을 위한 일본 문화 대중서로도 손색이 없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