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개막한 프로배구 2012∼2013 V리그 남자부의 관심 사항 중 하나는 누가 가빈(캐나다) 이후 최고의 용병인가 하는 점입니다. 가빈은 2009∼2010 시즌 한국에 온 후 삼성화재의 3년 연속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이끌며 챔프전 MVP를 독점했고, 3년 연속 득점상을 받은 슈퍼 용병이었습니다.

이런 가빈이지만 처음부터 최고의 용병은 아니었습니다. 현대캐피탈과 LIG손해보험이 먼저 테스트를 했지만 돌려보낸 선수였습니다. 206㎝나 되는 장신에 점프도 좋았지만 원래 농구선수였다 배구로 전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기본기가 너무 엉성했기 때문이죠.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의 조련으로 개천에서 용 난 격입니다. 가빈은 캐나다 대표팀에서 2진급이었는데 이제 부동의 라이트로 자리 잡았고 많은 연봉을 받고 러시아로 진출했습니다.

배구 팬이라면 역시 2009∼2010 시즌 중반 한국에 와 그때까지 꼴찌였던 여자부 GS칼텍스를 연승으로 이끌며 플레이오프 티켓을 안겨준 데스티니라는 용병을 기억하실 겁니다. 높이뛰기 선수였던 데스티니 역시 미국에서 주목을 받지 못한 선수였지만 한국을 거쳐간 후 미국 대표팀의 에이스로 성장했습니다. 데스티니는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체계적인 웨이트트레이닝을 받았다”고 털어놓더군요.

남자부 현대캐피탈은 2년 연속 챔피언에 오르는 데 주역을 한 루니(미국) 이후 2008∼2009시즌 미국 대학생 선수 앤더슨을 데려왔는데 키는 208㎝로 컸지만 기본기가 부족해 두 시즌만에 돌려보냈습니다. 한국 프로배구에서 퇴출된 앤더슨은 하지만 지금은 미국 대표팀의 주전 레프트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올 시즌 여자 용병 중 흥국생명의 휘트니 도스티(24·미국)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키 193㎝에 허벅지 굵기가 무려 24인치나 되는 휘트니는 가빈이 그랬던 것처럼 아직 완성된 선수는 아닙니다. 하지만 육상 높이뛰기에서 2006년 애리조나주 챔피언에 오른 바 있는 휘트니는 엄청난 탄력에 힘이 장사입니다. 그가 때린 공은 잘못 맞으면 손가락이 골절될 정도로 강해 팀 훈련 때는 다들 휘트니의 공을 받지 않으려고 피할 정도라고 합니다. 스파이크 서브도 한국에 와서 처음 배웠다는데 아직은 범실이 더 많지만 일단 꽂히면 에이스가 될 정도로 위력적입니다. 휘트니의 잠재력으로 보아 아마 시즌 중반에 돌입하면 ‘여자 가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한국배구는 무명 선수를 세계적인 선수로 만들 정도로 훈련 시스템은 완벽합니다. 하지만 한국 배구는 남녀 모두 세계랭킹이 10위권 밖으로 밀려나 있습니다. 한국도 어느 정도 장신화에는 성공했지만 대신 특장점이던 조직력이 무너진 탓이 아닌가 싶습니다. 배구도 복싱처럼 체급을 나누든지 해야 한국이 설 자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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