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경기 안양시 동안구 평촌동 한림대성심병원에서 김성구 한림대동탄성심병원 교수, 스카르파 파도바대 교수, 박홍규 한림대성심병원 교수(왼쪽부터)가 소아 발달장애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안양 = 김호웅 기자 diverkim@munhwa.com

기훈(가명·34개월)이는 네 살이 될 때까지 말을 잘하지 못했다. 어머니 박모(35) 씨는 그저 남자아이라 말을 늦게 배운다고 생각했다. 기훈이가 태어날 당시 약간의 뇌출혈 증상이 있었지만 이내 치료가 됐고 성장과정에서도 별다른 증상이 없어 크게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기훈이의 걸음걸이가 이상하다고 느낀 박 씨는 급하게 병원을 찾았고 기훈이가 뇌출혈 후 생기는 백질연화증으로 조기 재활치료가 필요했던 사실을 알게 됐다.

“기훈이가 발달 지체를 보이는 상황이고 치료가 늦어져 장애가 남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소아 발달장애는 이렇듯 소리 없이 찾아온다.

그 수는 결코 적지 않다. 국내 신생아 1000명 중 5~10명은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아 발달장애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조기 발견이 급선무다.

소아기는 인간의 성장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여서 조금만 때를 놓쳐도 발달이 지체되는 것은 물론, 후유증이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출산 당시 뇌경색으로 인해 기훈이보다 뇌 손상이 더 심각했던 한 여아는 주기적인 재활치료를 통해 27개월인 현재 정상에 가까운 발달을 보이고 있다. 그만큼 발달장애는 초기에 발견하고 그 원인을 파악해 치료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9일 오후 경기 안양시 동안구 평촌동 한림대성심병원에서 열린 ‘제3회 한림-파도바 국제 학술 심포지엄’을 통해 마우리지오 스카르파(Maurizio Scarpa) 이탈리아 파도바대 소아청소년과 교수와 김성구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박홍규 한림대성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만났다. 세 교수는 각각 대사 발달장애, 적응·자립 발달장애, 발달장애의 유전자 진단 등에 주력하며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들과의 문답을 통해 소아 발달장애의 최신 진단 기법과 치료법에 대해 알아본다.

―발달장애란.

김성구(이하 김) = 소아가 성장하면서 단계적으로 밟아야 할 일정한 신체 기능을 거쳐 나가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발달이 늦은 ‘발달 지연’뿐 아니라 발달 형태가 왜곡돼 나타나는 ‘발달 이탈’과 ‘발달 분리’도 포함한다. 발달장애의 양상은 아동 발달의 주 영역인 운동, 언어, 인지, 정서 및 사회성에서 일어난다. 운동 발달장애의 경우 1세 전후에, 인지 발달장애는 2세 전후, 적응·자립 발달장애는 4~6세 정도에 그 증상이 나타난다. 뇌성마비, 지적장애, 자폐스펙트럼장애, 언어장애,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틱(TIC)장애 등이 있다.

―발달장애의 원인은.

김 = 염색체나 유전자 이상, 저산소성 뇌손상, 선천성 대사 이상, 뇌 기형, 말초신경근육 이상 등 많은 원인이 있다. 동일한 원인이라도 소아에 따라 남게 되는 장애가 달라지기 때문에 무 자르듯 원인과 증상을 연결할 수는 없다. 따라서 소아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을 보고 그 원인을 파악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저산소성 뇌손상이나 뇌 기형은 자기공명영상(MRI)촬영을 통해 비교적 쉽게 원인이 드러나고 선천성 대사 이상도 소변검사를 통해 어느 정도 진단이 가능하다. 하지만 MRI와 소변검사 등으로도 그 원인을 분석하지 못하는 사례가 굉장히 많다. 이런 경우는 대개 유전자 이상이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최근 인간 염기서열 분석이 가능해짐에 따라 유전자 변이와 장애의 연관성을 찾기 위한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인한 발달장애는 치료가 가능한가.

김 = 저산소성 뇌손상은 만삭아의 경우 1000명 중 2~4명 정도에서 발생하지만 미숙아(37주 이전 출산)는 약 60%에서 발생할 만큼 빈도가 높다. 산모의 감염과 임신중독증, 태반·자궁 이상, 조기양막파수 등의 문제로 신생아의 뇌에 산소가 부족해져 일부 기능이 손상되는 것이다. 과거에는 치료 방법이 없었으나 최근에는 신생아의 뇌에 산소 모자를 씌우는 ‘쿨링 시스템(cooling system)’을 통해 어느 정도 치료가 가능하다. 또한 다양한 약제의 뇌손상 방어 효과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최근 우리 연구팀이 실시한 동물실험에서 항경련제로 사용되는 토피라메이트(topiramate) 등이 저산소성 뇌손상 방어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선천성 대사 이상으로 인한 발달장애는.

마우리지오 스카르파(이하 스카르파) = 대사장애는 5000가지 종류가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리소좀 축적질환(LSD·Lysosomal Storage Disease)이다. 우리 몸에 있는 세포 중 쓰레기 처리장 같은 역할을 하는 리소좀에서 특정 효소(단백질)가 부족해 발생하는 질환이다. 특정 효소가 부족하면 이 효소가 처리해야 하는 세포 내 독성 물질을 제거할 수 없어 만성적으로 독소가 누적돼 몸에 이상이 생기는 것이다. 종류가 70가지 정도 되고 유럽에서는 신생아 5000명당 한 명꼴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리소좀 축적질환은 현재 많은 연구가 진행돼 있고 치료 가능성도 열려 있다. 부족한 효소를 몸속으로 직접 넣어주는 대체효소요법을 통해 대부분의 질환이 치료된다. 다만 뇌신경계로는 효소가 들어갈 수 없어 여기에 대한 치료는 현재 불가능한 상태다.

―뇌신경계까지 전이된 리소좀 축적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한다던데.

스카르파 = 우리의 뇌에는 뇌-혈관 장벽(BBB·Blood-Brain Barrier)이 있어 상당수의 약물이 뇌까지 도달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이 때문에 대사장애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효소치료제가 많이 나왔지만 이 약효가 뇌까지 전달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현재 학계에서는 뇌 신경계까지 전이된 리소좀 축적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효소치료제가 뇌-혈관 장벽을 통과하지 못하는 이유는 분자량이 크기 때문인데 나노 입자(파티클) 치료제를 만들어 뇌까지 약효를 도달하게 하거나, 뇌세포를 감염시켜 효소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바이러스를 활용한 약제를 주입하는 방식이 있다. 나노 입자 치료제의 경우 동물실험에서 약효가 뇌까지 15% 도달하는 등 효과가 좋았으나 인간에게서는 아직까지 충분한 효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성공한다면 파킨슨병이나 알츠하이머 치매 등 다른 신경질환에도 확대 적용이 가능할 정도로 획기적인 연구다.

―저산소성 뇌손상이나 대사 이상이 발견되지 않으면 결국 유전자 검사로 원인을 알아내야 하나.

박홍규(이하 박) = 그렇다. 발달장애를 앓는 소아의 10~50%는 유전자 이상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발달장애를 치료하는 데 있어 유전자 검사는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2003년 인간 염기서열 분석이 가능해짐에 따라 장애와 관련된 유전자를 찾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고 하나씩 원인 유전자들이 드러나고 있다. 이런 데이터베이스 축적으로 미래에는 발달장애의 진단이 더 쉬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는 비용·효율 문제로 인해 전체적인 유전자 검사가 임상에서 선별검사로 쓰이진 않고 있다.

―유전자 검사를 활용한 발달장애 진단은 어느 수준까지 왔나.

박 = 아직은 초기 단계다. 인간의 염색체는 23쌍으로 구성돼 있고 염색체 정보는 무려 30억 쌍의 서열로 이뤄져 있다.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완성되기 전에는 염색체 23쌍의 형태에 문제가 있을 때만 이상 유무를 알 수 있었지만 현재는 30억 쌍 가운데 어떤 서열이 잘못됐는지 찾을 수 있는 단계까지 왔다. 다만 이 중 약 1%의 유전자 서열에 대해서만 그 역할을 파악한 상태다. 나머지 99%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이 1%를 ‘엑솜’이라고 하는데, 현재는 검사 비용이 비싸고 분석에 시간이 많이 걸려 임상화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데이터가 쌓여서 임상에 활용되고, 나머지 99% 유전자에 대한 역할도 밝혀진다면 개인별 유전 특징에 따라 조기 진단과 함께 예방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에도 이용하고, 같은 질환이라도 유전자에 따라서 다른 치료 방법을 선택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안양 = 유민환 기자 yoogiz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