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과학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존 브록만 엮음, 이한음 옮김 / 와이즈베리

마음이란 무엇인가. 이 고색창연한 질문에 가장 최신의 학문적 성과를 집대성, 답하고 있는 책이다. 심리학·뇌과학·생물학·언어학 등 ‘마음의 연구’와 관련된 학문들을 망라하고 있는 책은, 우리가 어슴푸레 갖고 있는 마음에 대한 상(像)을 보다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게 한다. 그것은 곧 마음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이며, 예측 가능한 추론의 과정까지 포함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 책은 마음에 대한 과학적 분석의 종합·최신판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저자들은 각 분야에서 세계 최고급 전문가인 16명의 학자다. 스티븐 핑커를 비롯해 V S 라마찬드란, 프랭크 설로웨이, 필립 짐바르도 등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르르한 석학들이다. 저자들이 책에서 보여주는 마음에 대한 연구 결과는 흥미진진하기 그지없다.

우선,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인 스티븐 핑커는 인간의 마음을 절묘하게 가공된 복잡한 정보처리장치에 비유한다. 인류의 조상들이 식량을 수렵·채집하는 과정에서 직면했던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자연선택에 의해 설계된 연산기관’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시기심, 복수심, 자긍심처럼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감정들도 모두 진화의 산물이라고 핑커는 주장한다.

V S 라마찬드란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흥미로운 의문을 제기한다. 현생 인류의 뇌는 약 20만 년 전에 현재의 크기와 지적 능력을 갖추게 됐다. 하지만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속성, 즉 언어의 발명, 도구의 사용, 불의 이용, 예술·신앙 등은 약 4만 년 전에 ‘갑자기’ 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비밀의 열쇠로 라마찬드란은 ‘거울뉴런’을 제시한다. 다른 사람의 경험이나 감정을 관찰자가 곧바로 이해하고 수용하도록 도와주는 신경세포인 거울뉴런으로 인해 ‘모방 학습’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언어, 도구의 사용, 미술과 수학 등은 우연히 발명됐다가 거울뉴런으로 인한 모방 학습 덕분에 집단 전체로 빠르게 퍼져 나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진화심리학자 제프리 밀러는 인간의 마음은 생존 기계가 아니라 ‘구애 기계’로서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가령 인간은 왜 그렇게 많은 어휘를 습득할까. 어른은 평균 약 10만 단어를 알고 있는데, 실상 일상 대화에서 쓰는 어휘는 5000개 정도로 제한돼 있다. 밀러에 따르면 어휘의 규모는 지능의 강력한 지표로서 배우자 선택에 중요한 기준이 된다. 따라서 일상생활에서는 자주 쓰지 않는 9만5000개의 ‘장식용 단어’는 구애에 유용하기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명석한지를 과시하기 위해 사용한다는 것이다.

실제 감옥을 모방한 이른바 ‘스탠퍼드대 감옥 실험’으로 유명한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는 지난 2004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의 수감자 학대 사건을 배경으로, 환경이 성격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했다. 당시 미 국방부는 아부그라이브 교도소 사건이 ‘좋은 통에 나쁜 사과가 몇 개 들어간 탓’이라고 둘러댔다. 하지만 짐바르도는 “실상 선량한 사람들을 망치는 것은 나쁜 사과가 아니라 나쁜 통 때문”이라고 반박한다. 그는 이를 ‘식초 통에 들어간 오이’에 비유한다. 마트에서 사온 오이를 식초 통에 넣는다면 오이가 ‘안 돼, 나는 단맛을 지키고 싶어’라고 외쳐도 그 통은 오이를 피클로 만들 뿐이라는 것이다.

이 밖에도 책은 진화론과 성격 이론을 결합, ‘태어난 순서가 성격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는 프랭크 설로웨이, 뇌를 조종하는 기생 생물을 연구한 로버트 새폴스키, 특정 생각과 행동을 관장하는 뇌의 부위를 생화학 연구로 밝혀낸 스티븐 로즈와 스타니슬라스 드엔, 쌍둥이 4000쌍을 대상으로 유전과 환경이 인간 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데이비드 리켄 등 마음에 관한 다양한 연구 결과를 소개하고 있다.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