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역사 / 팻 테인 엮음, 슐람미스 샤하르 외 지음, 안병직 옮김 / 글항아리

100세 시대를 맞아 우리나라도 노년의 삶은 중요한 화두가 됐다. 초고령화 사회는 출판가에도 영향을 미쳐 수년 전부터 노년을 주제로 한 책들이 적잖게 나오고 있다.

삶의 노숙함과 노련함으로 무장한 노년이야말로 청춘을 뛰어넘는 가능성의 시기이며 가슴 뛰는 생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노년에 가족의 의미를 새록새록 발견해가고 노년의 삶을 새롭게 사는 방법을 전해주는 서적도 출간돼 독자들의 호응을 받았다. 노후를 대비한 재테크 서적은 부지기수다. 하지만 노년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바라본 책은 그동안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노년의 오랜 역사를 다룬 이 책 ‘노년의 역사’는 반갑다. 서양 역사에 나타난 노년의 역사지만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이 적지 않다.

책을 엮은 런던대 킹스칼리지의 팻 테인 연구교수를 비롯해 유럽 중세 노인·여성·아동사 연구가인 슐람미스 샤하르 텔아비브대 명예교수, 프랑스 혁명기 노년의 삶을 연구한 데이비드 트로얀스키 브루클린대 교수, ‘삶이라는 여행: 미국의 노령화 문화사’란 저술로 퓰리처상 후보에 오른 바 있는 토머스 콜 텍사스대 교수 등 7명의 역사가가 고대 그리스, 로마, 중세, 르네상스, 17∼20세기 등 시대별로 집필을 분담해 역사 속 노인의 삶을 집중 탐구했다.

역사가들이 그리는 노년의 초상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기본적으로 학술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 책은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노년의 역사에 접근한다. ‘노인들은 가정과 사회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가’하는 물음과 관련된 사회사적 관점과 ‘사람들이 늙음을 어떻게 인식했으며 노년에 어떤 가치와 의미를 부여했는가’하는 점에 주목한 문화사적 관점이 그것이다. 책은 교양서로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학계의 전문적인 연구 성과를 간명하고 평이한 서술 방식으로 일반 독자들이 알기 쉽게 소개한다. 특히 풍부한 기록물과 230여 컷의 도판과 그에 대한 친절한 설명은 독자들이 노년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살피고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책에 따르면 문학 작품에 그려진 노인의 모습은 다양했다. 83세까지 장수한 괴테는 1773년 24세의 나이에 쓴 ‘파우스트’에서 노년은 우울하고 아무리 극단적이더라도 어떤 수단을 통해서라도, 심지어 영혼을 악마에게 팔아서라도 젊음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가진 것으로 그렸지만 훗날의 저술에서는 평정과 성찰의 시기, 욕망이 충족된 시기로서 노년을 긍정했다. 장수했던 또 다른 작가인 빅토르 위고는 노년에까지 정신적 힘에 대해 긍정적이었다. 67세의 나이에 쓴 ‘레미제라블’에서 노인 장발장을 통해 강인하고 감동적인 노인의 초상을 제시했다. 실제 그는 이후 계속해서 책을 출판했고, 68세에 임시정부의 파리 대표로, 74세에 의회의원으로 선출되는 등 왕성한 활동을 이어나갔다.

노년에 대해 부정적인 묘사를 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꼽힌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노령자들은 지나치게 비관적이고 불신이 강하고 악의적이며 의심이 많고 편협하다. 그들은 삶에 콧대가 꺾이고 그래서 그들의 가장 큰 희망도 생존하는 것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노년에 대한 ‘비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노인들은 과거를 생각하고 과거 속에 살며, 희망보다는 기억에 의존한다. 그들의 과거는 길지만 미래는 짧고 불확실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수다스러울 정도로 계속 과거에 대해 말한다.”

그런가 하면 고대 로마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였던 키케로의 말은 시간을 초월해 오늘날에도 의미심장하게 전달된다. “노년에는 스스로 싸우고, 권리를 지키며, 누구든 의지하려 하지 않고, 마지막 숨을 거두기까지 스스로를 통제하려 할 때만 존중받을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노인과 노년의 삶에 대한 기존의 통념과 고정관념을 깨우치고 오류를 바로잡으려 한 점이다. 18세기 말 독일 브란덴부르크 지역 일부 도시의 성문에는 ‘자녀에게 먹을 것을 의존하거나 가난에 시달리는 자는 이 몽둥이로 죽도록 얻어맞을 것이다’는 글이 새겨진 큰 몽둥이가 걸려 있었다. 노인들이 성인이 된 자녀와 함께 살았고 그들의 보살핌을 받았을 것이라는 통념을 여지없이 깨는 사례다.

책을 우리말로 옮긴 안병직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피할 길 없는 숙명이라는 체념과 짐스러운 존재라는 불명예 이외에 ‘나이 든 삶’에 대한 이해와 성찰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가”라고 반문한다. 그는 “이 책의 필자들은 역사적으로 어느 시대에나 노년의 삶은 빈부와 계급에 따라, 성별에 따라, 도농 주거지역 등에 따라 큰 차이가 있었으며 노년의 경험도 개별 노인의 경제적 지위, 신체적 건강, 사회적 적응 능력 등에 따라 대단히 상이한 것이었음을 강조하고 이를 차별화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도연 기자 kdy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