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연극 ‘아워 타운’에서 조오지(아래 왼쪽)와 에밀리(아래 오른쪽)의 결혼식 장면. 두 사람 뒤로 깁스 집안과 웹 집안 사람들이 흥겹게 축하연주를 하고 있다. 명동예술극장 제공

세상사에 떠밀려 살아가는 우리에게 격려와 위로를 전하는 연극이 무대에 올랐다. 지난 9월18일부터 오는 14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아워 타운’이다. 미국 극작가 손턴 와일드(1897∼1975)의 퓰리처상 수상작이기도 한 연극은 두 가정의 가족애와 우여곡절이 잔잔하게 펼쳐지는 가운데 삶에 대한 가슴 뭉클한 감동과 함께 한 줄기 깨달음을 선사한다. 그것은 곧 하루하루의 일상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할 ‘선물’이라는 것이다.

연극 ‘아워 타운’은 한국에서 이미 1960년대부터 ‘우리 읍내’로 번안돼 여러 차례 공연됐던 작품이다. 특히 대학 등 아마추어 극단에서 이 작품을 선호해 공연횟수는 따지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이번에 오세곤 번역·한태숙 연출로 무대에 오른 ‘아워 타운’은 보다 원작에 충실하다. 제목에서부터 ‘우리 읍내’가 아닌 ‘아워 타운’인 만큼 시·공간적 배경이나 등장인물의 이름도 원작을 따르고 있다. 그 결과 원작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을 더욱 선명하게 전달하는 연극으로 다가온다.

막이 오르면, 1901년 5월7일 미국 뉴햄프셔주 그로버즈 코너즈의 아침이 밝아오고, 평범한 하루가 시작된다. 우유 배달부와의 일상적인 대화로 하루를 여는 아침 풍경, 방과 후 아이들은 숙제를 하고, 교회에선 성가대 연습이 한창이다. 그야말로 평범하기 그지없는 마을이다. 여기에 두 가정이 있다. 의사 깁스와 파리에 한번 가보는 것이 소원인 깁스 부인, 마을 제일의 투수이자 학교 회장인 아들 조오지 등으로 이뤄진 한 가족. 지역신문 편집장인 웹과 진지한 웹 부인, 그들의 똑똑하고 예쁜 딸 에밀리 등이 또 한 가정의 주요 인물들이다. 이 두 가족의 가정사를 주축으로, 늘 취해 있는 성가대 지휘자 스팀슨과 그를 욕하는 마을 부인네들, 그리고 순경·신문배달부·우유배달부의 이야기가 곁들여진다. 어려서부터 함께 학교를 다니고, 같이 어울리던 깁스 집안의 아들 조오지와 웹 집안의 딸인 에밀리는 몇 년 후 결혼을 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연극의 1, 2막이다. 누구나 겪는 일상사를 통해 점점 완성돼가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연극에서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연극 속 무대감독이 이들의 이야기를 끌어내고, 해설하며 연극을 이끌어간다.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이 모든 일상사가 연극임을 주지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3막에서 연극은 급반전한다. 바로 인생의 종착역이라고 할 수 있는 죽음을 다룬다. 차마 떠나보낼 수 없는 가족들을 하나, 둘 잃게 되는 과정에서 연극은 주제를 선명히 드러낸다. 극 중에서 에밀리는 이렇게 말한다. “살면서 자기 삶을 제대로 깨닫는 인간이 있을까요? 매 순간마다요?”

21세기에 접어들어 가장 중요하게 떠오른 주제 중 하나가 ‘지금, 여기’의 개념이다. 왜, 숱한 ‘인생 참고서’들이 지금 이 순간, 이곳에서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고 누누이 강조하지 않는가. 이 주제를 ‘아워 타운’만큼 직접적이고 생생하게 보여주는 연극은 아마 없을 것이다. 서이숙·박용수·김정영·김세동·김용선·손진환·박윤희·정운선·지영란·신덕호·이화룡·이기돈·이지혜 등 출연. 1644-2003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