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화학기업 코오롱에 첨단섬유 ‘아라미드’와 관련한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승소한 미국 최대 화학기업 듀폰이 이번엔 ‘시장 후발주자’이자 ‘특허 침해 피고’라는 정반대 입장에서 법정 분쟁을 벌이고 있어 주목된다. 듀폰은 지난 2009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세계 최대 종자업체 몬산토와의 ‘유전자 변형 씨앗 특허 침해’ 소송에서 패소한 이후 합의하지 않고 재판을 이어나갈 것으로 알려졌다.

14일 미국 농업기술 전문 언론 등에 따르면 지난 8월 1심에서 10억 달러(약 1조1200억 원)를 배상하라는 배심원 평결을 받은 종자업계 2위 듀폰이 몬산토 측과 합의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전해졌다.

아라미드 1위 사업자로 후발주자인 코오롱에 영업비밀 침해 혐의를 제기하며 판매 금지와 배상 등을 요구했던 듀폰은 이번 소송에서는 유전자 변형 종자 사업 분야 후발주자로서 시장에 도전하려다 1위 기업인 몬산토의 ‘소송 장벽’에 가로막히는 정반대 상황에 처했다.

제초제에 강한 씨앗을 만드는 몬산토의 유전자 변형 기술 ‘라운드업레디(Roundup Ready)’를 듀폰의 계열사 파이어니어가 활용해 신제품 ‘옵티엄 GAT 시드’ 신제품을 개발한 것을 놓고 몬산토 측은 “상당한 양의 투자를 먼저 해서 최첨단 기술을 개발한 회사의 지적재산권은 보호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해 듀폰 측은 “시장 독점을 막고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기 위해선 다른 회사도 제품을 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듀폰은 아라미드 소송에선 “코오롱이 듀폰의 자산인 ‘케블라’ 기술을 악용했다”고 주장하면서 “시장 독점 사업자인 듀폰이 저렴한 가격과 품질로 도전하고 있는 코오롱의 시장 진입을 막고 있다”는 코오롱의 주장을 반박했었다.

듀폰은 또 몬산토에 대해 시장지배력을 남용했다는 이유로 반(反)독점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코오롱이 듀폰으로부터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당한 직후 반독점 소송을 제기한 것과 같은 수순이다.

천문학적 배상금을 부과받은 뒤 “손해 규모가 과다 추정됐다”며 맞서고 있는 상황도 비슷하다. 약 1조1200억 원의 배상금 평결에 대해 듀폰은 “과도한 배상금”이라며 “계열사 파이어니어가 지금까지 옵티엄 GAT 시드를 판 적이 없고 앞으로도 팔 계획이 없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항소 의사를 밝히고 있다.

지난해 9억1990만 달러(약 1조120억 원)의 배상금 판결을 받은 코오롱 역시 “코오롱이 2006년 미국 시장에 진출해 5년간 판매한 총액이 33억 원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식을 벗어난 결정”이라고 맞서고 있다.

김하나 기자 han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