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경남 창원의 마산문학관. 시조시인 이은상이 생전에 산책을 즐기던 노비산 언덕에 세워져 있다.

아직도 폭염의 기세는 다 사그라지지 않았지만, 이제 바람 끝에 서늘한 가을의 기운이 묻어나기 시작한다. 가을은 봄과 더불어 여행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특히 가을에는 자연 속에서 문학적 향기가 가장 짙어지는 때다. 그렇다면 올가을에는 문학을 테마로 삼아서 여정을 꾸려보는 것은 어떨까. 한국관광공사가 매월 꼽아주는 ‘가볼 만한 곳’의 9월 목적지는 ‘문학의 향기’다. 지역별로 문학적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다섯 곳의 여행지를 골라봤다.

◆ 경남 창원 마산합포구 = 마산은 지난 2010년 진해시와 함께 통합창원시로 합병됐다. 마산의 바다는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문학의 고장이다. 멀게는 신라시대 문장가 고운 최치원이 월영대에 오랫동안 머물렀고, 가까이는 ‘내 고향 남쪽바다…’로 시작하는 ‘가고파’의 시조시인 이은상이 있다. 마산 여행의 시작점은 창원시립 마산문학관이다.

이은상이 생전에 산책을 즐기던 노비산 언덕에 있다. 시인이 말한 ‘내 고향 남쪽바다의 그 파란 물이 눈에 보이는’ 곳이다. 여기에 이은상의 시비가 있다. 전시관에는 시인의 육필원고도 있다.

창원시립 마산박물관도 빼놓을 수 없다. 박물관 앞마당에는 최치원이 머무르던 월영대를 찾아 시를 남긴 문장가들의 시비가 있다. 고려시대 정지상, 김극기, 안축 등과 조선시대 서거정, 이황, 정문부 등 당대의 문사 13명이 남긴 시다.

파리에서 활동한 추상조각가 문신의 작품을 전시한 창원시립 문신미술관도 함께 둘러보면 좋겠다. 창원시립 마산문학관 055-225-7193, 창원시립 문신미술관 055-225-7181

◆ 전북 부안 신석정문학관 = 전북 부안은 변산의 웅장한 산세와 켜켜이 쌓인 해안바위의 채석강, 전나무 숲길이 깊은 그늘을 만드는 내소사, 울금바위를 병풍처럼 두른 개암사 등으로 널리 알려진 여행목적지.

그러나 제법 눈밝은 여행자들도 이곳에 시인 신석정의 발자취가 있다는 것은 잘 모른다. 부안군 선은리에는 신석정문학관이 있다. 지난해 세워진 문학관에는 신석정의 시집과 육필원고, 생전에 쓰던 가구와 필기구 등의 유품들을 모아놨다. 신석정은 서울에서 ‘시문학’ 동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이곳으로 낙향해 선은리에 집을 짓고 ‘청구원(靑丘園)’이라 이름했다. 이 집에서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처럼 그의 주옥 같은 시들이 탄생했다.

부안 문학기행의 다음 목적지는 매창공원이다. 기생이자 여류시인인 매창은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로 시작되는 절창의 이별가를 쓴 이다.

그의 시비가 매창공원에 있다. 부안의 해안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달리면 고사포와 하섬, 모항갯벌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 내소사와 곰소염전, 개암사도 그 길에서 금방이다. 신석정문학관 063-584-0560, 내소사 063-583-7281

◆ 경기 양평 황순원문학관 = 경기 양평에는 황순원문학관과 소나기마을이 있다. 황순원의 고향은 평남 대동군 재경면. 평양 숭실중과 일본 와세다(早稻田)대를 거쳐 경희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대구·부산 등지의 피란생활을 빼면 거의 서울에서 살았다. 그렇다면 왜 황순원문학관은 양평에 있는 것일까. 그건 단편소설 ‘소나기’에 있는 딱 한 줄 문장이 이유가 됐다. 소설 속에서 소녀가 ‘양평읍으로 이사간다’는 대목 때문이다. 소나기마을의 중심은 황순원문학관. 출입구 왼쪽에 황순원과 부인 양정길의 묘역이 있다.

문학관 제1전시실에는 서재를 재현해 놓고 집필 공간과 소장품, 유품을 전시해 놓았다. 제2전시실에는 ‘독짓는 늙은이’ ‘학’ ‘카인의 후예’ 등 소설 속의 장면을 입체적 조형물로 만들어 놓았다. ‘남폿불 영상실’이라 이름붙여진 제3전시실에서는 비와 바람, 번개 등 특수 효과를 동원해 소설 ‘소나기’를 4차원(4D) 입체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작품 ‘그날’을 감상할 수 있다. 상영시간은 11분. 소설의 감동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문학관 밖에는 소나기광장 주변에 수숫단이 세워져 있고, 산책길이 사방팔방 뻗어 있다. 소나기광장에서는 오후 1시, 3시, 5시에 인공으로 소나기가 내린다. 문학관 주위에는 산책코스도 있다. 여기다가 양평군립미술관을 더하면 일정이 더 충실해진다. 황순원문학관 031-773-2299, 양평군립미술관 031-775-8515

◆ 경북 칠곡 구상문학관 = 경북 칠곡에는 시인 구상의 문학관이 있다. 6·25전쟁 직후 구상 시인은 부인이 의원을 차린 칠곡의 왜관에 내려와 1974년까지 거기서 산다.

영남일보 주필을 맡은 시인은 작품활동을 하며 당대의 예술가들과 폭넓게 교유했다. 한때 화가 이중섭도 시인의 집에 머물며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문학관은 부인이 경영하던 의원 자리에 세워졌다.

문학관 뒤편에는 시인의 거처였던 관수재가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문학관에는 육필원고를 비롯한 유물 300여 점이 전시돼 있는데, 화가 이중섭과 박정희 전 대통령, 운보 김기창 화백 등과 주고받은 편지도 있다. 2층에는 소장하고 있었거나 기증받은 책 등을 보관하는 보존서고가 있는데, 이 공간에서 수시로 시창작교실 등의 문화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칠곡에는 서울 명동성당과 비슷한 때 건립된 성당인 가실성당이 있고, 왜관읍에는 성베네딕도회왜관수도원이 있다.

수도원은 독일 수도원에서 파견된 수도자들이 북한과 중국 옌지(延吉)의 수도원에서 수도생활을 하던 중 당국의 탄압과 북한 정권의 박해로 피란내려와 1952년 건립한 곳이다. 칠곡에는 6·25전쟁 당시 가장 치열한 전투인 다부동전투를 기념하는 다부동전적기념관도 있다. 구상문학관 054-973-0039, 가실성당 054-976-1102, 다부동전적기념관 054-973-6313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 소설 ‘소나기’에 등장하는 수숫단이 세워진 경기 양평의 황순원문학관 산책로.

이미지 크게보기 경북 칠곡의 구상문학관과 함께 둘러볼 만한 성베네딕도회왜관수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