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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에 묻히다/우쓰미 아이코·무라이 요시노리 지음, 김종익 옮김 / 역사비평사
1949년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를 상대로 독립전쟁을 치르며 게릴라전투를 벌이던 중 네덜란드군에 사로잡혀 총살당한 인물 중 한국인 양칠성이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 군무원으로 인도네시아에 파견된 그는 일본군 패전 후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에 투신했다가 죽었으나 유골마저 현지에 방치된 채 잊어졌다. 그의 유골은 인도네시아인 동지에 의해 사후 26년 만인 1975년 발굴돼 서부 자와섬 외딴 시골의 영웅묘지에 재매장됐다. 일본군 병사였던 양칠성은 인도네시아의 독립 영웅으로 재조명이 이뤄졌다.
이 책은 양칠성을 비롯해 태평양전쟁 당시 인도네시아 자와섬으로 파견된 조선인 군무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재일 조선인 문제를 연구하던 일본인 부부가 발표한 1980년 저서다. 저자들은 인도네시아 체류 중 인도네시아 독립 영웅으로 추대된 3명의 일본 병사 중 ‘양칠성’이라는 이름의 조선인을 주목하게 됐고, 그 후 인도네시아에 파견된 조선인 군무원의 발자취를 추적했다. 이 과정에서 연합군이 자와섬에 상륙할 무렵 조선인 군무원 6명이 결성한 고려독립청년당의 존재가 드러났다. 이들은 일본군 내부의 무기를 탈취해 게릴라전을 펼치며 일본의 패전과 조선의 독립에 힘을 보탤 것을 계획했었다는 것.
일제강점기에 조선의 20대 청년들은 일제의 침략전쟁에 군무원으로 징용됐다. 일본 육군성은 조선인과 대만인을 군무원으로 모집했다. 전선이 확대되고 전쟁 상황이 악화하면서 일본인만으로는 군 임무를 보조하던 군무원의 수요를 충원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패전 무렵 조선인 군무원은 15만 명을 넘어섰고, 그중 3223명이 포로수용소 감시요원으로 선발돼 조선에서, 일부는 대만과 인도네시아로 파견돼 현지 포로수용소 관리 업무를 맡았다. 이들은 머나먼 이국땅에서 다른 나라의 식민지 해방전쟁에 투신했고, 전쟁 후 전범으로 몰려 사형을 당하거나 승리한 제국의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
저자는 1970년대 중반 인도네시아에서 조선인 군무원의 발자취를 찾아다녔다. 1978년엔 현지서 입수한 고려독립청년단의 독립운동 행적 기록을 토대로 한국에서 양칠성의 가족 및 조선인 군무원들이 조직한 항일 비밀결사의 핵심 인물도 수소문해 만났다. 인도네시아, 한국에서 찾아낸 자료를 토대로 기록한 저서를 통해 독립 영웅, 혹은 전범으로 이국에서 죽어간 식민지시대 조선 청년의 삶이 우리 시대 역사의 한 장으로 되살아난다.
신세미 기자 swm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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