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균 나쁜 균 / 제시카 스나이더 색스 지음, 김정은 옮김 / 글항아리

지나치게 청결한 주변 환경이 오히려 병을 불러온다든지, 세균을 물리치는 항생제가 오히려 약제내성을 가진 더 무섭고 독한 균을 만들어낸다는 것쯤이야 이미 알고 있는 얘기긴 하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 어떤 메커니즘이 작동하는지, 이런 발견이 어떤 과학적 발견을 통해 확인됐는지 등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에 가깝다. 책은 이런 막연한 상식을 질병 퇴치의 역사와 버무려 과학적이고 설득력 있게 다루고 있다.

책의 주된 가지는 질병 탐구의 역사와 함께 인류가 세균과 벌여온 방대한 전쟁사다. 전염병을 전파시키는 특정물질이 있다는 사실을 추론했던 르네상스 시대부터 의사들이 질병의 원인을 두고 전염성 세균이 원인이라는 전염론자와 위생론자로 갈리던 19세기 중반. 그리고 항생제의 광범위한 사용을 거쳐 그 폐해가 드러나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를 주도했던 인물들과 그들이 이룬 성과에 대해 촘촘히 다룬다.

저자의 관심사는 몸이라는 생태계 속에서 인체의 세포보다 10배나 많은 미생물이 우리 몸속에서 이루고 있는 균형이다. 그러나 인체 내 미생물의 균형이 인위적인 청결과 항생제의 무차별 사용으로 무너지고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이를 두고 저자는 ‘인류가 세균과 승산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책 앞쪽에 이미 미국에서 발생한 대학 미식축구 선수의 돌연한 죽음과 일곱살짜리 아이의 투병기를 제시해 놓았다. 건강하던 대학생 운동선수는 항생제 내성균에 의해 급작스레 사망했고, 아이는 극심한 증세의 자가면역질환에 감염됐다. 이 두 가지 예시를 통해 저자는 항생제로 무차별 융단폭격을 가하는 현대의학의 치료법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떤 비극으로 돌아오는지를 드러낸다.

그렇다고 저자가 좋은 미생물까지 죽인다는 이유로 청결 자체를 문제 삼거나, 내성균 출현의 위험성 때문에 항생제 사용을 무조건 반대한다는 식의 단선적인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항생제에 맞서 그때마다 진화하는 균들과의 승산 없는 싸움이 어떤 방식으로 전개돼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를테면 면역계에 도움이 되도록 체내 미생물의 균형을 살짝 바꿔 몸 안에 들어온 균들이 독성을 뿜어내지 않도록 하거나, 치명적인 감염을 막기 위해 비교적 안전한 균을 몸속에 주입해 맞불을 놓는 방식 등이 그것이다.

책에는 듣도 보도 못한 수많은 세균들의 이름과 함께 전문용어들이 난무한다. 책 뒤쪽에 주석과 참고문헌만 60쪽이 넘으니 그것만 봐도 짐작이 되겠다. 무슨 주문처럼 길고 긴, 생전 처음 듣는 균들의 이름을 읽어내는 것이 버거울 수도 있겠지만 책을 읽다 보면 결국 건강이라는 게 일방적 차단이나 격리, 혹은 균에 대한 무차별 폭격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균형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란 얘기며, 몸에 침입한 균을 초토화시키는 것보다 스스로의 체내에서 균형을 회복하도록 돕는 것이 더 훌륭한 치유법이란 저자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