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헤쳐온 격동기를 보여주는 연극이 무대에 올랐다. 지난 10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중구 예장동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하는 연극 ‘전명출 평전’이다.

주인공 전명출의 일생을 통해 한국 최현대사를 조명하는 연극은 바로 우리 자신과 윗세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대적 배경은 1970년대 말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파란만장했던 이 기간 동안 우리가 어떤 세상을 살아왔는가를 연극은 축약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부끄러움과 함께 회한 섞인 씁쓸함을 남긴다.

연극의 주인공 전명출은 1948년 경남 합천 생이다. 1970년대 말 서른의 나이에 이른 명출은 순박하기 그지없다. 그의 꿈은 소 스무 마리. 그 정도만 있으면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각박한 현실은 명출을 ‘마늘 도둑’이 되게 만든다. 흉년이 들어 살기 힘들게 된 명출이 이웃의 마늘을 훔친 것. 이로 인해 마을 사람들에게 멍석말이를 당한 명출은 아내 순님을 데리고 고향 합천을 뜬다.

공업도시로 발돋움하는 울산에 정착한 명출은 건설현장에서 막노동꾼으로 일한다. 그런 그에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다. 건설현장 소장이 명출의 성이 전 씨고, 합천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선 그를 십장 자리에 발탁한 것. 당시 실력자와 동향에 성이 같다는 이유로, 소장은 명출을 앞세워 공무원들에게 접근하는 등 사기 행각에 이용한다. 하지만 명출은 그런 소장의 행동이 못마땅하다. 소장은 명출이 세상을 좀 더 배워야 한다며 삼청교육대에 집어넣는다.

삼청교육대를 계기로 명출의 삶은 180도 바뀐다. 세상 돌아가는 대로 자신의 생각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건축회사를 차린 명출은 1980년대 호황기를 맞아 큰돈을 번다. ‘시멘트 열 포가 들어가는 공사는 다섯 포로, 철근 열 가락이 들어갈 공사는 다섯 가락으로’ 하는 부실공사로 막대한 수익을 올린 것이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명출은 합천에 귀향, 동네 유지로 행세하며 사기 행각을 계속한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에, 코믹하게 진행되는 연극은 30여 년의 세월을 그리다 보니 다소 엉성한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1시간40분의 짧은 공연시간에 우리가 거쳐온 현대사를 이토록 축약해서 보여 주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변신을 거듭하는 명출의 파란만장한 삶은 한편으론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나 막이 내리고 객석에서 빠져나올 쯤엔 전명출이 살아온 이력이 바로 우리들의 삶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02-758-2150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