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스 / 잭 터너 지음, 정서진 옮김 / 따비

‘스파이스 채널’을 아시는지. 성인 남자라면 대부분 알고 있을 에로물 전용 방송이다. 그렇다면 왜 이 같은 채널에 스파이스(Spice), 즉 향신료(또는 향료)라는 말을 붙였을까. 도대체 ‘향신료 채널’이라니. 무슨 요리전문 방송인 줄 알 것 아닌가. 하지만 여기엔 스파이스에 대한 서양인(특히 유럽인)의 끈질긴 욕망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이 같은 점을 시·공간적으로 광범위하게 파고들었다.

책의 부제 ‘향신료에 매혹된 사람들이 만든 욕망의 역사’ 그대로, 저자는 향신료를 둘러싼 유럽인들의 끈질긴 욕망이 빚어낸 역사를 들려준다. 향신료를 세계 역사에서 중요하게 만든 점은 두 가지다. 우선, 유럽과 더 넓은 세계가 접촉하는 촉매제가 되었다는 것, 나아가 유럽이 마침내 세계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목적은 사실 향신료의 주요 생산지인 인도로 가는 길을 뚫기 위해서였다. 인도 항로를 개척한 바스코 다 가마, 인류 최초로 세계 일주를 떠났던 마젤란이 앞다퉈 바닷길 개척에 나선 것도 향신료를 찾기 위해서였다.

책은 유럽이 향신료를 찾기 위해 막대한 노력을 기울였던 15세기 말∼16세기 초 수십 년 동안 벌어진 ‘향신료 전쟁’에 대한 고찰에서 시작한다. 대항해 시대를 열었던 탐험가들은 향신료의 확보라는 지대한 목표를 갖고 있었다. 16∼17세기에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영국과 네덜란드 사이에서 아시아를 놓고 다툰 전쟁은 바로 ‘향신료 전쟁’이었다.

일찍이 저장 수단이 열악했던 시절, 사람들은 향신료에 매료됐고 향신료는 부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고대 이집트와 로마, 중세 유럽에서 향신료는 ‘영혼의 조미료’였다. 이집트에서는 후추가 파라오의 육체를 불멸로 보존하기 위해 방부제로 사용됐다. 로마인들은 시나몬 연기가 죽은 자의 영혼을 하늘로 인도한다고 생각했다. 중세 기독교인들은 향신료를 시신에 바르는 것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따르는 길이라고 믿었다.

저자는 성서, 고대 그리스 로마 시인들의 풍자시, 요리책과 의학서, 고전 문학 작품, 대항해 시대 탐험가들의 항해일지 등 자료를 토대로 향신료의 역사 이면에 숨겨진 인간의 욕망을 흥미롭게 펼쳐 보인다. 하지만 향신료를 둘러싼 거시적인 문제보다는 훨씬 친근하고 인간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실 저자는 향신료가 역사를 어떻게 바꾸었는지보다는 향신료를 둘러싼 세계가 어떻게 변했는지에 관심을 더 기울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그토록 유럽인들이 갈망해 마지않았던 향신료의 위상이 추락하게 된 이유, 다시 말해 열광의 대상이었던 향신료가 어떻게 오늘날 다소 이국적인 음식 재료로서 그 위상이 축소됐는지를 살피고 있다. 참고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요 향신료는 후추, 클로브(정향), 넛메그(육두구), 메이스, 시나몬, 카시아, 생강 등이다.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