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중국 작가 예링한의 ‘라스트 익스페리멘털 플라잉 오브젝트(Last Experimental Flying Object)’.

올해 37세인 중국 작가 판젠(潘劍)의 작품은 ‘검은 풍경화’다. 온통 검은 화면을 찬찬히 살피면 흰 새가 날갯짓하고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익숙한 풍경이 드러난다. “풍경이 왜 온통 검은색이냐”는 물음에 작가는 “다양한 색을 쓰면 풍경이 색에 묻힌다. 짙은 색에서 오히려 세세한 묘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어둡고 비판적 시선을 담은 정치적 메시지의 작업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중국 스타작가의 작품은 미술시장의 큰손으로 부상한 중국 컬렉터의 영향력에 힘입어 세계 현대미술가의 주목을 받아 왔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성장한 작가들의 작품은 ‘정치적 팝아트’로 불리며 작품값에서도 상위에 올라 있다. 과연 이들 ‘차이나 아방가르드’ 이후의 작가들은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

2000년대 초반부터 중국 현대미술을 국내에 소개해온 기획자 윤재갑 씨가 중국의 주목할 만한 신진작가 8명의 작품을 선보인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갤러리에서 25일까지 열리는 ‘유희적 저항’전에는 1970~1980년대 중국서 태어나 유년기에 격변기를 경험한 젊은 작가들의 발언을 담은 작품들이 전시 중이다. 윤 씨는 중국 문학평론가 왕샤오밍의 말을 빌려 “중국 젊은 작가들이 그들의 선배보다 덜 정치적이라는 말은 편견”이라고 말한다. “겉보기엔 유약하고 진지함이라곤 없는 유희적 존재처럼 보이지만 사회와 인간에 대한 깊고 격렬한 마음을 담아내고 있다”는 이야기다.

출품작가들은 회화 조각 영상을 통해 당대에 대해 발언한다. 루정위안(盧征遠)은 결국 소멸하는 동식물을 묘사한 그림에 직접 만든 액자를 끼우고, 손으로 물감을 칠한 소품을 대형 화폭에 확대해 재현한다. 또 중국 주택단지에 설치돼 있는 운동기구들을 재조합해 누구도 사용할 수 없는 형태의 이미지를 펼친 짱쿤쿤(臧坤坤)의 작품도 눈길을 끈다. 폐허가 된 공장을 꼼꼼하게 묘사한 배경 위로 만화영화처럼 고래가 떠다니는 예링한(葉凌翰)의 초현실적 영상도 색다르다. 하오량(？量)은 전통 중국화를 비롯해 일본 우키요에(浮世繪), 서양의 르네상스식 기법과 바로크적 장식 등을 실크 소재에 어우러 내고, 황징위안(黃靜遠)의 그림에선 화려한 장식의 실내장식을 배경으로 동서양 인물을 조합하는 등 배경과 인물이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신세미 기자 ssem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