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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불만 / 마이클 샌델 지음, 안규남 옮김 / 동녘

“1990년대 월마트가 (미국) 남부와 중서부 너머로 기반을 확대하려고 하자 지역사회 활동가들이 대형 상자 모양의 상점들이 요구하는 용도 구역 변경에 반대하고 나섰다. 매사추세츠주 그린필드의 유권자들은 월마트의 뉴잉글랜드 타운 진입 여부를 두고 실시된 1993년 주민투표에서 기록적인 투표 참여율로 월마트의 진입을 가까스로 저지했다. (…) 1990년대 중반까지 이 활동가들은 각 지역에서 월마트를 비롯한 대형 소매점들에 맞서 대형 매장의 확산에 반대하는 싸움을 100여 회 이상 벌였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한국사회에 ‘정의’ 열풍을 일으킨 저자는 지난 1996년 출간한 책에서 미국에서 1990년대 중반 벌어진 기업형 슈퍼마켓(SSM) 반대 운동인 ‘스프롤 버스터(sprawl busters)’를 ‘절차적 공화정’의 틀을 뛰어넘어 시민들이 목소리를 낸 사례로 주목한다. 신간 홍보차 방한해 지난 6월1일 연세대서 강연했던 저자는 당시 기자간담회서도 한국의 SSM 규제에 대해, “소비자들에게 최저가의 제품을 제공하는 것이 사회의 유일한 가치는 아니다”며 “중소기업과 지역사회의 작은 가게들이 번영을 누릴 수 있도록 해 주는 것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책은 16년 전 미국에서 출간됐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SSM 문제를 비롯해, 종교의 자유, 집단명예훼손, 애국가 부정 발언 등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례들과 유사한 내용이 많아 책의 배경이 미국인지, 한국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물론, 미국에서도 출간 직후 여러 석학들이 저자가 제시한 민주주의의 문제를 다룬 ‘논쟁! 민주주의의 불만’(1998)이란 책까지 펴냈을 정도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로스쿨과 하버드대에서 민주주의를 주제로 펼친 강의를 바탕으로 쓰여진 책은 ‘미국 민주주의의 역사’ 바로 그 자체다. 3부로 구성된 책에서 저자는 미국 헌법 판례에 숨은 많은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민주주의의 큰 흐름인 ‘공화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해 설명한 뒤 미국의 역사에서 공화주의가 쇠퇴하고 자유주의가 융성하게 된 배경을 면밀히 추적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공공의 이익보다는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방향으로 흘러온 미국식 자유주의를 강하게 비판한다.

책의 제목에 등장하는 ‘불만’이란 단어는 이처럼 본래의 민주주의의 모습은 사라지고 점차 자유주의로 치닫고 있는 1990년대 미국 사회에 대한 저자의 실망 내지 걱정을 상징한다. 저자는 자유주의 일변도의 현재의 미국 상황을 ‘절차적 공화정’이라 이름 붙이고 비판하며 우리 사회에 새로운 ‘공화주의’ 논쟁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우리는 과연 민주공화국에 살고 있는가’,‘우리 사회에 공공성의 원리는 존재하는가’라는 근본적 물음을 던지고 있는 책은 국가의 공공성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는 21세기 한국사회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최영창 기자 yc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