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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 / 이충렬 지음 / 김영사

최순우(오른쪽 사진) 전집과 고유섭 전집은 이 책을 소개하는 기자의 서가 보물 1, 2호다. 마음내키는 대로 최순우 전집의 책장을 넘겨도 좋다. 꾸밈없으면서도 질박한 한국미의 다양한 측면과 조우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빙그레 미소를 짓게 된다.

그가 쓴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도 미술사학도의 바이블이었고 한국미를 대중에게 부챗살처럼 퍼트린 책이었다.

하지만 현대사의 격랑 속에, 또한 흙 속에 묻혀버릴 운명이었던 한국 문화유산의 가치를 되살려낸 문화선각자 혜곡 최순우의 삶을 종횡으로 가르며 추적한 전기는 그간 찾아보기 어려웠다. 책을 통해 최순우의 매혹과 홀림의 인생 드라마가 공개됐다는 것은 ‘최순우 마니아’로서 행복한 일이다. 이 책의 미덕은 소설 형식을 빌린 평전이라는 점이다. 퇴근 후 책을 잡았는데 도저히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단숨에 독파한 뒤 책장을 덮은 뒤에는 ‘한국미란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사유하게 됐다.

전작인 ‘간송 전형필’을 통해 드라마틱한 감동을 줬던 저자의 글에 이번에도 흠뻑 동화된 것이다.

‘길고 가늘고 때로는 도도하면서도 슬프기도 한 청자, 착실하고 건강한 조선자기, 익살스러운 듯 하면서도 깊이있는 매력을 뿜어내는 고려 기와….’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새로운 프레임과 구수한 문장으로 대중에게 알려온 ‘박물관사의 전설’이 최순우다. 책은 박물관 일선 서기에서 출발해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순직하기까지 평생을 바쳐 우리 문화유산과 국보의 아름다움을 찾고 세계 속에 알린 최순우의 삶을 감동적으로 살려냈다.

최순우가 발표한 문화재 해설 280편, 미술에세이 205편, 논문 41편, 사료해제 86편 등 모두 600여 편의 글을 정독하면서 그의 정신사를 입체적으로 추적했다. 최순우와 함께 일하던 사람은 물론 그의 집에서 하숙하던 학생들까지 찾아내 인터뷰했다. 최순우의 숨결이 닿은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삶과 궤적을 좇았다. 책은 이렇게 최순우의 삶을 압축했다.

“그의 삶은 외로웠다. 지금은 우리 문화유산이 아름답고 자랑스럽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그가 살았던 시대에는 일제강점의 후유증인 식민사관과 해방 이후를 휩쓴 서구 우월주의에 힘겹게 맞서야 했다.”

일제강점에서 해방되자마자 6·25전쟁을 겪으면서 개발과 독재의 시대를 건너온 한국 현대사는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갖기에는 가난하고 척박하고 힘겨웠다. 일제 식민사관의 잔재와 서양문화에의 경도는 뿌리깊었다. 그때 최순우가 있었다. 버려진 석탑에서 천년의 역사를 추적하고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았던 백자 항아리에서 최고의 미학을 발견했다. 지붕에 비가 새던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 기둥에서 바라본 아득한 아름다움에 눈물을 흘렸다.

유럽 국가들에서 순회전을 요청했을 때의 일화다. 우리 국보에 대한 보험액을 국제 수준에 비해 적게 산정하자 최순우는 보험액을 올리지 않으면 전시를 못 하겠다면서 우리나라 문화재에 대한 정당한 대접을 요구했다. 그 이후 우리나라 국보는 해외전시 때 세계 최고 수준의 대접을 받았다. 오늘날 세계를 뒤흔든 한류의 거대한 흐름은 그에게서 시작됐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