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보물섬’은 세계의 부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인 조세 피난처를 뜻한다. 이런 생생한 제목이 나온 것은 저자의 실제 경험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1997년 저자는 가봉 여행에서 프랑스 석유 회사 엘프 아키텐이 프랑스와 가봉의 정계에 로비를 했다는 정황을 발견하고 취재에 들어간다. 하지만 스위스와 같은 조세 피난처의 계좌와 맞닥뜨릴 때마다 자금 흐름은 오리무중에 빠진다. 8년이 지나고 나서야 저자는 아프리카에서 빠져나온 자본이 조세 피난처를 통해 유럽과 미국으로 이동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저자는 조세 피난처들이 현재 글로벌 경제의 중핵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규명했다.

이처럼 과감한 어조로 엘리트 계급 범죄의 도피처를 드러내 보이면서도 이 책이 음모론으로 흐르지 않는 것은 조세 피난처뿐 아니라 자본주의의 취약점과 불결함을 연대기적 서술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조세 피난처를 설명하기 위해 역외 금융 체제를 만들어 낸 1950년대 후반 런던 유로마켓, 탈규제 광풍을 상징하는 1997년 영국의 ‘유한 책임 합자 회사법’ 등을 상세하게 분석했다. 역외 금융 업무 종사자의 이야기를 곁들이면서 조세 피난처의 비인간성을 드러내 보인다.

이근평 기자 istandby4u@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