癌유전이 아닌 ‘자연의 복수’

먹고 마시고 숨쉬는 것들의 반란 / 샌드라 스타인그래버 지음, 이지윤 옮김 / 아카이브

#1. 흰돌고래의 미래 보존을 위한 국제포럼에서 자연보호론자 레온 피라로드는 흰돌고래가 걸리는 암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했다.“말씀해 주세요. (미국) 세인트로렌스 강의 흰돌고래들이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요? 흡연을 심하게 했나요? 식습관이 안좋았나요? (인간은) 면역이 있고, 흰돌고래만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세요?” 전세계 바다 어류가 겪고 있는 간암은 오염 화학물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렇다면 어류를 먹는 인간들은 안전한 것일까.

#2. 저자는 20세에 방광암에 걸렸었다. 그 사실을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다른 가족들도 암에 걸렸었다고 말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그는 입양아였다. 가족이란 염색체를 공유하는 집단이기도 하지만 환경을 공유하는 집단이기도 하다.

암의 원인을 추적할 때 혈통에만 집중하면 암이란 퍼즐에서 우리가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는 한 조각에 얽매이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대다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암 발병에 있어 유전적 영향은 사실 크지 않다. 두 가지 사례는 암이 유전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의 문제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책은 우리가 만들고 버렸지만 공기, 물, 흙, 음식에 스며들어 다시 우리를 죽음으로 이끄는 것들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저자는 두꺼운 침묵으로 둘러싸인 암과 환경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 분투했다.

책에 따르면 2009년 미국에서만 약 148만 명이 암 진단을 받았다. 하루 4000명꼴이다. 1973년부터 2000년 사이 소아암은 22% 증가했다. 아이들이 암에 걸린 원인을 생활 습관 탓으로 돌리기엔 무리가 있다. 어린이들은 담배를 피우지도 않고, 술도 마시지 않는다. 스트레스를 주는 직장에 다니지도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보다 더 많이 숨쉬고 먹고 마신다. 공기, 음식, 물 속에 있는 화학물질이면 무엇이든 고스란히 흡수한다. 어린이들은 몸무게 대비 2.5배 더 많은 물을 마시며 3~4배 더 많은 음식을 먹고, 2배 더 많은 공기를 들이쉰다.

공기, 토질 오염으로 우리가 먹고 마시고 숨쉬는 것이 100년 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나쁘다. 이렇게 살다 암에 걸리느니 차라리 문명의 혜택을 덜 누리더라도 공기 좋은 상태에서 사는 것이 낫다는 얘기까지 나올 법하다. 앞으로 몇천 년 뒤에 1960~2060년대 지구촌 주요 도시지역에 살았던 인간의 미라가 연대기적으로 발견된다면 급속한 산업화로 100여 년간 빠르게 썩어간 토양, 악화된 수질, 질식할 것 같은 공기 등에 신기하게 적응하면서 살아온 인간 유전자(DNA)의 강인함을 확인할 수 있게 될지 모르겠다.

생각해 보라. 국제 암연구기관에 따르면 도시 및 산업지대의 대기에는 보통 동물 실험에서 발암성 물질 또는 유전변이 유발물질로 입증된 수백 가지의 화학물질이 들어있다고 한다. 공기 중에 암세포가 둥둥 떠다니는 셈이다. 산업노동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발암물질에 끊임없이 노출되고 있다. 저자는 미국에서 환경요인으로 인한 암 사망자 수는 살인사건 희생자 수를 훨씬 웃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암과 환경의 연관성을 밝히는 것은 극히 어렵다.

책에 따르면 여전히 8만 종이나 되는 화학물질이 우리 주변을 순환한다고 알려졌지만 그 가운데 철저한 독성검사를 거친 건 단 2%뿐이다. 시장에 화학물질을 들여오는 데 아무런 검사도 필요없었다. 이 전부를 분석하기에는 실험용 쥐도, 돈도, 시간도 부족하다. 독물학자들은 모든 화학물질의 5~10% 미만이 인간 발암물질이라고 주장한다. 그것만 해도 4000~8000종에 달한다. 암은 시간을 두고 발생한다. 오염물질의 혼합물과 건강과의 연관관계를 규명하기가 극히 어렵다.

저자는 우리가 발암물질과 확인되지 않은 유해물질에 끊임없이 노출되고 있다는 것을 다양한 사례로 보여준다.

1980년대 초 노스캐롤라이나 미 해병대 캠프의 식수에서 트리클로로에틸렌이라는 공업용제와 벤젠, 톨루엔 등의 오염물질이 상당량 검출됐다. 하지만 오염은 1950년대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1989년까지 수십 년 동안 수백만 명의 사람이 오염된 식수에 노출됐다. 추적 결과 2009년 7월에야 유방암에 걸린 17명의 남성 전역 해병대원을 찾아내 확인할 수 있었다. 그제야 그들은 자신이 암에 걸린 원인을 찾아낼 수 있었다. 남성 유방암은 매우 희귀한 사례다.

2007년 미국에서만 발암물질로 확인되거나 의심되는 물질 3억7852만2411㎏이 공기, 흙, 물에 배출됐다. 모든 것들이 다시 돌아온다. 독극물 방출과 무분별한 자원낭비, 환경파괴 등 인간이 지구마을에 미친 영향이 부메랑이 돼서 다시 다가오는 것이다.

생물학 박사이자 문예창작학 박사인 저자의 별명은 ‘칼을 쥔 시인’이다. 암과 환경의 복잡한 관계를 예리한 메스로 파헤쳤다는 점에서 합성살충제의 위험을 경고한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에 비견되는 책이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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