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궁녀는 ‘전문직 여성’… 부동산 부자도 있었다

궁녀 / 신명호 지음 / 시공사

조선시대 연산군, 광해군의 총애를 받았던 장녹수, 김개시 등의 실존인물부터 TV드라마 속 장금, 동이 등의 가상인물까지. 궁중여성의 일상은 오늘에도 다양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며 주목을 받고 있다.

왕 중심의 정사에서 벗어나 궁녀들의 은밀한 사생활을 주목한 궁중이야기가 대중문화 속 주요 트렌드로 여겨질 정도다. 한동안 실존인물 중심의 역사이야기가 강세였다면, 요즘은 드라마 ‘동이’와 영화 ‘후궁: 제왕의 첩’처럼 가상 인물의 ‘픽션 사극’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왕을 비롯해 왕의 가족이 거주하던 궁중에서 궁녀는 의식주 생활부터 육아까지 왕실 살림을 도맡았다. 궁중의 생활문화를 이끌었던 궁녀는 남성위주의 가부장적 조선시대에 음식, 복식, 자수 등에서 여성특유의 영역을 일궜던 전문인이었다.

궁녀는 흔히 왕의 여자, 혹은 왕의 잠자리 상대로서 부분적인 일면 위주로 부각돼 왔지만, 당시로선 드물게 월급을 받는 전문직 여성이었다. 최고 지위의 제조상궁은 월급으로 쌀 25두5승, 콩 5두, 북어 110마리를 받았다.

고소득자였던 궁녀로, 인조-효종-현종대의 3대에 걸쳐 궁중에서 일했던 상궁 박씨는 자기명의의 부동산을 매입한 뒤 국가의 공증까지 받았던 재산가였다.

궁녀를 제목으로 내세운 이 책은 조선시대 궁녀이야기를 다양한 일화와 더불어 재조명한다. 궁녀 선발부터 궁녀 조직구조 및 궁녀의 일, 성과 사랑 등 구체적인 일상을 각종 사료를 바탕으로 조목조목 정리한다. 조선시대 궁녀에 관한 공식기록을 담고 있는 ‘경국대전’ 및 ‘한중록’ ‘계축일기’ 등의 관련 사료 외에 구한말 궁녀들의 증언 등을 종합 분석했다.

궁녀는 통칭 나인(內人), 궁중 여관(女官), 궁인으로 불렸다. 주 업무가 시중, 바느질, 자수, 음식, 청소, 빨래 등이었으며 왕비, 후궁, 세자빈 등 왕실여성을 위한 궁녀일 경우 육아 업무가 더해졌다. 근무처는 왕과 왕실가족의 침실을 뜻하는 지밀을 비롯해 침방, 수방, 세수간, 세답방, 퇴선간 등으로 나뉘었다. 조선시대 궁녀의 수는 왕별로 차이는 나지만 대략 500~600여명에 이르렀다. ‘경국대전’의 궁녀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궁녀는 최고 정5품의 상궁부터 최하 종9품까지 구분된다. 4품 이상은 궁녀가 아니라 왕의 후궁이었다.

궁녀로 선발되면 성(性)과 관련해 철저히 금지된 삶을 살아야 했지만 동성연애 등 궁녀들이 연루된 사건 사고도 적지 않았다. ‘단종실록’에 따르면 3명의 궁녀가 3명의 별감과 단체로 연애편지를 주고받다 처벌된 스캔들도 등장한다. 세종의 큰며느리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다가 궁녀와 동성연애에 빠져 궁궐에서 쫓겨났다.

또 세종조 궁녀 내은이와 내시 손생은 사랑의 징표를 주고받았다가 들켜 참형을 받았고, 세조의 후궁이 됐던 궁녀 덕중은 내시 송중에 이어 세조의 조카 귀성군에게 구애했다가 교수형에 처해졌다. 역사의 주변부 인물로 여겨져온 궁녀들의 내밀한 일상에 다가서는 가운데, 당대의 생활풍속 및 조선시대 여성생활인의 생생한 삶의 면모를 접할 수 있다.

신세미 기자 ssemi@munhwa.com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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