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스타일의 두 얼굴크리스천 랜더 지음, 한종현 옮김 / 을유문화사

한 줄의 저자 서문도 없다. 옮긴 이의 덧붙이는 말도 없다. 책 날개의 짤막한 저자소개를 넘기면 책 본문이 바로 시작된다. 왜 그런가 했더니, 그게 다 이유가 있다. 책의 글은 애초에 출간을 목표로 쓰인 게 아니라 인터넷 블로그에 올려져 미국인들 사이에서 수많은 댓글과 열띤 토론을 불러일으켰던 것이기 때문이다. 실시간으로 소통하던 블로그의 글을 한데 묶어 책으로 내놓고 새삼 이러저러한 머릿말을 달기란 좀 쑥스러웠을 것이란 건 짐작할 만하다.

책의 원제는 ‘백인이 좋아하는 것(Stuff White People Like)’. 미국 인디애나대 박사과정을 중퇴한 저자가 2008년 책과 같은 제목의 인터넷 블로그를 개설한다. 스스로도 백인인 그는 블로그에 백인들이 좋아하거나 좋아한다고 믿는 것들의 단어 혹은 문장을 꺼내 놓고는 이를 분석하면서 백인들의 허위의식을 시니컬하게 때론 유머러스하게 풍자하는 글을 올렸다. 문화적인 소양이 남보다 뛰어나 보이려 무진 애를 쓰고, 손톱만 한 배려만으로도 세상에 기여하고 있다는 턱없는 자부심을 갖는 백인들. 그러나 결국은 다들 똑같은 것들을 추구하고 있는 백인들의 속내가 다분히 위악적으로 그려졌다.

저자가 책에 간추린 ‘백인이 좋아하는 것’은 150가지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커피’편을 보자. 백인들은 스타벅스를 애용하면서도 이 체인이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한 방식은 혐오한다고 항변한다. 그럼에도 정작 낯선 공항에서 스타벅스를 발견하면 이들은 비로소 안도한다. 백인들은 또 2달러를 더 내고 공정무역 커피를 마시면서 저임노동자의 땀과 눈물이 담긴 커피를 마시는 주변 사람들과 자신은 다르다며 스스로 만족해한다. 저자는 대부분 이런 방식으로 백인들을 비꼰다. 실제로 외국문화에는 쥐뿔 관심도 없으면서 그 나라 음식을 내는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먹을 때만 관심을 가지고 진취적이며 문화적인 사고를 가진 척하는 백인들. ‘외국음식 레스토랑에서 다양한 인종의 손님 가운데 백인이 자신 혼자일 때 가장 만족스러워한다’는 대목에서는 웃음이 터진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면 인종차별주의자로 비칠까봐 전전긍긍하고, 다른 이들보다 우월해 보일 테니 실제로는 진짜 채식을 하지 않으면서 ‘채식주의자’를 자처하고, 맥도날드나 월마트 같은 다국적 대기업들이 자원을 파괴한다고 비난하지만 절대 애플이나 이케아는 욕하지 않고, 하이브리드자동차 토요타 프리우스를 타는 것이 마치 대기오염을 막는 공익적 행동인 것처럼 우쭐하는 백인들의 모습이 책 속에 있다.

독자가 백인이 아님에도 대부분의 대목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니 우리의 삶도 백인의 삶과 그리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책 맨 뒷장에는 ‘당신은 얼마나 백인스러운가’란 평가항목이 있다. 150개 단어를 주고 좋아하는 것에 체크를 하면 그 숫자를 세서 자신이 ‘몇 % 백인’인지를 체크하는 내용이다. 저자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이를 체크하다 보면 백인이 아닌 황인의 독자 입장에서 우리가 가진 허위의식도 백인의 것들과 그닥 다르지 않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다.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