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안다는 건 왜 이리 어려운가요? / 류짜이푸·류젠메이 지음, 이유진 옮김/글항아리

“아버지가 쓰신 ‘동심설’을 죄다 자세히 읽었어요. 아버지가 마음의 승리를 얻으셨다는 것을 정말로 느낄 수가 있었답니다. 동심으로 돌아가셨다는 것을 정말로 느낄 수가 있었답니다. 동심으로 돌아가셨다는 것은, 세속의 수많은 정신적 짐을 내려놓으셨음을 의미하죠. 사회가 억지로 쓰도록 강요하는 온갖 ‘가면’을 찢어 버리시고, 타인을 경계하는 마음속의 단단한 ‘줄’과 ‘보루’를 허무셨음을 의미하죠. (중략) 동심으로 돌아간다는 건 정말로 큰 해탈이자 자유예요. 아버지의 마음에 어떤 쾌락이 존재하는지, 저는 상상할 수 있답니다.”

동심으로 돌아가는 것을 인생 최대의 개선, 즉 승리라고 생각하는 아버지에게 딸이 보낸 편지글의 일부다. 딸에게 아버지는 이런 답글을 보낸다.

“동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의 개선인 까닭은 그것이 마음의 승리이기 때문임을, 세상에 물들기를 거부한 것이기 때문임을 네가 알고 있어서 정말로 기쁘구나.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 돈과 지식이 풍부한 사람들이 결국엔 세상에 물들고 정복되어서는 갓난아이의 마음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지. 우리가 이것을 알고 정직과 천진함을 힘닿는 데까지 지키는 것이 바로 승리란다.”

이 책은 중국 정부의 탄압으로 망명한 비판적 지식인이자 사상가인 류짜이푸((劉再復·71)와 현재 미국 메릴랜드대에서 아시아·동유럽 언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딸 류젠메이(劉劍梅·45)가 1989년부터 1999년까지 팩스로 주고받은 편지 62통을 묶은 것이다. 아버지와 딸이 편지로 주고받은 내용이라고 가벼이 생각하면 착각이다. 사상가 아버지와 문학가 딸이 10년 동안 나눈 이 편지들은 학문 세계와 현실, 동양 문화와 서양 문화를 아우르며 삶과 문학, 여성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조국을 떠난 두 지식인에게 고향의 의미는 사뭇 각별하다. 디아스포라 지식인으로서 류짜이푸는 스스로를 ‘고독한 여행자’라고 규정한 아인슈타인의 고향을 이스라엘이나 독일로 한정 지을 수 없듯이, 자신을 끊임없이 표류하는 존재라고 여긴다. 그렇기에 그는 고향을 새롭게 정의한다. 정신과 감정의 생명을 길러 내는 곳, 자신만의 이상이 펼쳐진 왕국, 이를테면 ‘내가 사랑하는 세계’가 그가 찾는 마음의 고향이다. 류젠메이에게도 고향의 의미는 유동적이다. 동양 문화와 서양 문화의 중간 지대에서 이중 언어(중국어와 영어)로 사고하고 글을 쓰는 그는 ‘문화 고향’이라는 개념으로 정체성을 확인한다.

이 책이 갖는 두드러진 미덕 중 하나는 두 사람의 편지에 ‘소통’의 코드가 담긴 점이다. 아버지와 딸의 나이 차는 26년이다. 하지만 편지글로만 보면 나이 차를 느낄 수 없을 만큼 두 사람의 대화에는 허물이 없다. 딸은 아버지를 ‘정신의 안내자’ ‘마음의 선생님’으로 부른다. 딸에게 아버지는 권위적인 사람, 손윗사람이라기보단 삶을 이끌어 주는 진정한 멘토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아버지는 딸을 ‘여신’ ‘초경험적인 세상에서 지구로 온 나의 어린 동반자’라고 하며 존중의 마음을 보낸다. 이처럼 두 사람은 진정성이 담긴 ‘평등한 대화’를 통해 서로를 존중하며 응원한다. 이런 소통과 응원은 ‘불통’이 문제시되고 있는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지식인 부녀답게 이들의 대화는 매우 지적이다. ‘홍루몽’을 통해 존재와 우주에 대한 철학적 소명을,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통해 생명의 상태를 이야기한다. 조국애를 논하면서는 루쉰(魯迅)이, 진리의 상대화와 본질주의 해체를 논할 땐 미셸 푸코가 거론된다. 동서양 거목들의 사상을 만나 볼 수 있는 것은 이 책이 주는 또 다른 선물이다. 책의 원제는 ‘함께 깨달아 가는 인생’이란 의미의 ‘공오인간(共悟人間)’. 2002년 홍콩의 10대 양서로 꼽혔다.

김도연 기자 kdy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