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로드 / 신정일 외 / 청어람미디어

두 발을 번갈아 디디며 걷는 느린 길이 우리에게 주는 마음의 위안과 행복, 혹은 사유에 대해 다룬 에세이다.

도보여행가, 신문기자, 치과의사 등 저마다 다른 직업을 가졌지만, 굽은 길과 느리게 걷는 걸음에 깊은 애정을 가진 12명의 저자가 의기투합해 전국의 16개의 걷는 길을 소개하며 그 길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그 길 위에서 저자들은 유년을 추억하기도 하고, 실패로 끝난 젊은 날의 연애를 떠올리기도 한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교차되는 길에서는 인생의 순리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암으로 한 쪽 신장의 절반을 떼어내고 낫기 위해 길을 걸었다는 한 저자는 그 길 위에서 본 세상이 모두 축복이고 아름다움이었노라고 고백한다.

부산 기장의 대변항에서 학꽁치 회를 뜨는 날렵한 손과 구멍난 투망을 기워올리는 노부부, 포구에서 미역귀를 따던 아낙네들…. 저자는 길 위에서 만난 이런 사람들이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워 걷게 해줬다고 썼다.

책에는 길을 앞세워서 자신의 심상을 따라가는 글도 있고, 길 위의 풍경을 관조하듯 바라보는 글도 있으며, 길 위의 문화유산을 수집하듯 주워 담아낸 글도 있다. 도보여행 코스 개척 과정에서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주렁주렁 엮은 것도 있고, 길에서 만났던 사람들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꺼내보이기도 한다.

공저 형식의 책이 그렇듯 열 명이 넘는 저자의 원고를 그러모은 탓에 흐름이 끊기기도 하고, 문장이나 형식도 균질하지 않다. 그럼에도 매끄러운 솜씨의 이른바 ‘글쟁이’ 대신 ‘늘 길 위에 서 있는 이들’을 저자로 불러낸 뜻은 아마도 온몸으로 길을 느끼고 있는 이들로부터 온전한 육성을 듣고자 함이었을 터다.

이 책에 ‘한국의 명품길’로 소개되는 도보여행 코스는 덜 알려진 곳들이 대부분이다. 내포 문화숲길, 홍천 용소계곡길, 전주 마실길 등의 이름은 낯설다. 책의 뒷부분에 간략하게 보탠 8개의 걷기 코스도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걸 보면 아마도 되도록 알려지지 않은 길들만을 골라 소개하고자 했던 듯하다. ‘영혼을 치유하는 한국의 명품길’이란 책의 부제도 그래서 붙여진 모양이다.

책을 잡는다면 슬며시 도보 여행의 유혹을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여행안내서가 아닌 만큼 이 책에서 큰 도움을 받기는 어렵다. 정보라고 해봐야 한 번의 붓질로 그린 대략의 지도와 구간 소요시간 정도가 고작이다.

책에 소개된 도보코스는 두어 시간부터 서너 시간짜리가 대부분이지만 다 걷는 데 이틀이 걸리는 곳도 있고, 나흘 동안 걸어야 하는 구간도 있다.

하기야 도보여행에서 목적지가 무어 그리 중요할까. 영혼의 치유와 위로는 ‘멋진 풍경’이 아니라 순한 걸음과 맑은 마음 그리고 무념의 시간이 만들어내는 법이니….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