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도릭의 동방기행 / 오도릭 지음, 정수일 역주 / 문학동네

“대왕이 연회를 차리려고 할 때면 머리에 보관(寶冠)을 쓴 1만4000명의 제후들로 하여금 연회석상에서 그를 기다리도록 한다. 제후들은 저마다 외투를 걸치는데, 외투 하나에 달려 있는 진주의 값어치는 무려 1만5000플로린이나 된다. 궁내는 질서 정연하다. 모든 사람들이 십호, 백호, 천호에 편입돼 있으며, 각자에게는 부과된 책무가 있다. 자신이나 자신의 부하가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서로가 책임을 진다.”

14세기 이탈리아 프란체스코회 수사 오도릭(1265?∼1331)이 남긴 ‘동방기행’에 나오는 중국 대도(大都·지금의 베이징)에 있는 원나라 황제의 궁전에 관한 기록이다. 대칸의 궁전에 관한 기록은 매우 구체적이고 정확해 사서의 기록을 실증하고 있을 정도다.

태액지(太液池)와 이곳의 백옥석교(白玉石橋)를 묘사한 궁전 안 ‘푸른 산’ 곁에 펼쳐진 둘레가 1마일이 넘는 연못과 이 연못 위에 놓인 아름다운 다리 등에 관한 설명이 이를 말해 준다.

책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과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이븐 바투타의 ‘이븐 바투타 여행기’와 더불어 세계 4대 여행기로 손꼽히는 오도릭의 ‘동방기행’을 정수일(78)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이 우리말로 처음 옮긴 것이다.

이로써 역자는 세계 4대 여행기 중 ‘동방견문록’을 제외한 세 권의 책을 국내에 소개하는 성과를 거두게 됐다.

이탈리아 북부 프리울리에서 태어나 프란체스코회 소형제파 소속의 독실한 사제였던 오도릭은 제2차 기독교 동전(東傳)의 붐을 타고 중국까지 오게 됐다. 1318년 4월 베네치아를 출발한 그는 오늘날의 이란을 비롯한 서아시아와 인도,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를 두루 거친 뒤 중국 원나라에 이르러 6년 동안 머물렀다. 티베트와 이란 등 중앙아시아를 거쳐 고향에 돌아온 것이 1330년으로, 그의 동방 여행에 무려 12년의 세월이 소요됐다.

고향에 돌아온 오도릭은 다시 50명의 수사를 대동한 동방 여행을 준비하다 중병에 걸려 고향 프리울리의 작은 도시 우디네에서 1331년 1월4일 선종했다.

‘동방견문록’처럼 ‘동방기행’도 임종을 앞둔 오도릭이 한 지방관리로부터 여행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 달라는 요청을 받고 병상에서 동방 여행의 전모를 구술한 것. 이를 한 수사가 라틴어로 기록해 후일 편집·출간한 것이 이 책의 원본인데 지금은 소실돼 전하지 않는다.

헨리 율의 영역본을 저본으로 역주서를 낸 역자는 소략한 기술과 여행 노정 등의 혼동 및 오류 등이 심한 책의 이해를 돕기 위해 219항목의 역주를 달았다. 실크로드 및 문명 교류사를 천착하고 있는 역자는 지난 2일 열린 출간 기념회에서 “현재 해양 실크로드 답사를 진행 중이며 올해 60일 정도 중남미 바닷길을 답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영창기자 yc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