男尊女卑 조선, 그러나 욕망의 주체는 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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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읽는 조선 여성의 역사 / 강명관 지음 / 휴머니스트

조선시대 여성은 가부장제 하에서 오로지 종속적인 존재에 불과했을까. 특히 성(性)적 측면에서 여성의 욕망은 억눌리기만 했을까.

미리 답부터 말하자면,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성리학이 지배이념이었던 조선에서 여성에 대한 신분적, 성적 억압은 당연한 것이었다. 여성은 결혼전에는 아버지, 결혼하면 남편, 남편이 죽으면 아들의 뜻에 따라야 하는 종속적인 존재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주체적 욕구를 완전히 억누를 수는 없었다. ‘주체가 없는 존재’에서 ‘주체로서의 여성’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이 책은 그 같은 과정을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선 조선시대 풍속화의 대가 혜원 신윤복의 그림에서 이를 확인해보자. 그림 ‘후원유연’은 경화세족의 저택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연꽃이 핀 연못, 네모 난 돌을 2단으로 쌓아 올린 화단, 그 뒤 돌로 정교하게 쌓은 담 등으로 미뤄 이곳은 부호 양반가의 후원이다. 남자들이 입은 비단 도포와 넓은 갓 등 차림으로 봐 권세를 누리던 양반임이 분명하다. 이들이 기녀 셋을 후원으로 불러들여 거문고를 뜯게 하며 하루를 즐기고 있다. 이 집의 주인으로 짐작되는 왼쪽 맨상투 바람의 사내는 기녀를 자기 무릎 위에 앉히고 손으로 기녀의 몸을 더듬고 있다. 그림은 가부장제의 남성-양반의 성적 욕망이 여성-기녀의 예능노동과 성을 수탈했음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이와는 대별적으로, 신윤복의 그림 중에는 ‘가을나들이’도 있다. 바람이 소슬하게 부는 가을 날, 젊은 남자와 여자가 야외로 나왔다. 여자가 가마 바탕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가을을 즐긴다. 이때 여성은 명백히 즐거움을 누리는 주체가 된다. 쾌락적 주체로서의 여성을 여과없이 형상화했던 것이다. 또다른 그림 ‘밀회(월하정인)’ 역시 마찬가지다. 남자에 대한 여자의 성적 욕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여자는 쓰개치마를 쓰고 한밤중에 젊은 남자를 만나러 나왔다. 여자의 복색으로 보아 체면을 지켜야 하는 부잣집 가문의 여자다. 한밤 중에 젊은 남자를 만나는 여성의 능동적 태도가 부각돼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조선시대 그림 속의 여성 형상에 주목, 이를 통해 당대 사회의 이데올로기와 체제의 조건들을 밝히고 있다. 책에 수록된 150여 점의 그림 속에서 여성이라는 대상 위에 베일처럼 드리우고 있는 사대부 남성의 시선과 욕망을 읽어낸다. 아울러 그것을 걷어냈을 때 마치 풍경처럼 숨어 있던 조선 여성의 진짜 모습을 복원하고 있다.

저자는 “조선의 유교적 가부장제는 여성에게서 주체를 박탈하고자 했지만,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욕망의 주체를 박탈할 수는 없었다”며 “조선 후기의 회화는 바로 그 점을 입증한다”고 결론내렸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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