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언제 지갑을 여는가 / 파코 언더힐 지음, 김선영 옮김 /살림 Biz

‘뉴욕 맨해튼에 있는 한 호텔은 욕실에서 비누칠하는 객실 손님을 행인들이 감상할 수 있도록 바닥부터 천장까지 통유리로 된 목욕실을 마련해 놨다. 부끄럼이 많거나 남들 이목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라면 호텔 관리자가 기꺼이 가리개를 제공한다.’

책 내용의 일부다. 저자는 욕실과 화장실이 기능적으로만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라고 얘기한다. 화장실이 안락감을 주는 공간이자 자존감을 느끼는 공간으로 바뀐 것은 여성의 요구에 걸맞게 변화한 덕분이라는 것이다. 사회, 경제, 문화 면에서 여성의 힘이 세지고 있다. 여성의 지갑을 열지 못하면 어떤 기업도 살아남을 수 없다.

책은 2005년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대도시에서 서른 살 미만 젊은 여성의 경제력이 남성을 앞질렀다는 통계를 인용하고 있다. 여성 파워가 커지면서 주방의 위상도 달라졌다. 반짝반짝 빛나는 대형 냉장고, 화구가 여덟 개에 달하는 스토브와 와인 냉각기, 에스프레소 기계, 밥솥, 팝콘 기계, 스무디가 가능할 정도의 강력한 믹서기를 갖춘 화려한 부엌을 가진 여성이 급증했다. 저자는 “현대식 부엌은 조리장이 아닌 친목의 장으로 거듭났다. 부엌은 더 이상 기능적으로만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라 미감과 디자인을 보여 주는 곳이 됐다”고 강조한다.

여성용 제모 용품을 어디에 진열하는 게 가장 효과적일까. 대부분 사람은 남성 면도기 등을 파는 매대 옆에 놓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계적 소비 심리 분석가인 저자는 란제리 코너 옆에 진열하라고 권한다. 이유인즉, 여성이 다리를 매끄럽게 만들고 보습하는 행위는 남자들의 면도와 달리 관능적 분위기가 개입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달라이 라마가 ‘20세기 박물관’이라고 지목한 쇼핑몰이 여성에게 더 이상 필요한 물건을 사는 곳이 아닌 홈베이킹 수업을 듣고, 수영을 하고, 연인과 함께 영화를 보는 만능 해결사가 됐다고 주장한다.

남자가 후딱 쇼핑을 해치우는 반면 여성은 주변 환경으로부터 다양한 자극을 받기 때문에 쇼핑을 하면서 동시에 처리 가능한 다른 일들을 떠올린다. 책에 따르면 남편들이 짜증 날 정도로 여성들이 쇼핑에 시간을 더 많이 쏟고 더 여유를 부리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시간을 현명하게 보내는 것이다.

여성들이 매장에서 바라는 것은 청결,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선택권, 안전, 배려다. 이 때문에 편의점이 청결해지고 산뜻해지면서 언젠가부터 포르노 잡지가 사라졌다는 것. 맥주 진열대에 요염한 아가씨가 연상되는 제품 이미지 대신 가족 이미지를 부각시키자 매출이 급증했다는 컨설팅 결과도 소개한다.

저자는 “여성은 디지털카메라 하나를 사도 나와 내 가족이 어떤 삶을 누리는지 떠올리는 일을 즐긴다”고 말한다. 예진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