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사설 폐쇄회로(CC)TV 설치가 늘어나면서 사생활 침해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인근 노천카페 천장에 안내문이 게시되지 않은 CCTV가 설치돼 있다. 신창섭기자 bluesky@munhwa.com

4월29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주택가 빌라.

1층 현관으로 내려와 전화를 하던 이모(여·23)씨는 우연히 앞집에서 설치한 폐쇄회로(CC)TV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그동안 수시로 나와 전화를 하곤 했지만 관련 안내판을 보지 못해 CCTV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이씨는 “그간 이곳에서 수없이 많은 전화 통화를 했는데 내 모습이 다 녹화됐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아무래도 부담스럽다”며

“일부러 나를 보려고 설치하진 않았겠지만 사생활 침해 아닌가”라며 기분 나빠 했다.

이씨의 집 인근에는 일반 가정과 가게 등이 설치한 CCTV가 여럿 있다. 이 중 일부 CCTV의 경우 촬영 중임을 알리는 안내문을 건물 벽 등에 부착해 놨지만 커다랗게 쓰인 보안업체 명칭 뒤에 작게 쓰여진 ‘촬영 중’이란 글씨가 눈에 띄지 않아 주민들은 촬영 사실을 거의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수원 20대 여성 엽기 살인사건 등 최근 잇따른 강력범죄 발생으로 불안감이 커지면서 개인들이 설치한 CCTV가 늘고 있지만 관련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대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지난해 9월 통과된 개인정보보호법 시행령으로 CCTV의 운영 및 관리에 대한 규정이 마련됐다. 이어 6개월의 계도기간을 거쳐 지난 3월30일부터 시행령이 본격 시행됐다. 그러나 홍보 부족으로 법령을 위반한 채 운영되는 CCTV가 적지 않아 일반 시민들의 사생활이 침해당하고 설치자 역시 고액의 범칙금을 무는 등 양측 모두의 피해가 우려된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2009년 현재 전국에 설치된 사설 CCTV는 약 250만 대에 이른다. 특히 대형 쇼핑몰이나 상점 등의 경우 CCTV가 집중적으로 설치돼 있어 사생활 보호의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 2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한 대형 쇼핑몰에는 수많은 CCTV가 설치돼 있지만 이에 대한 안내표지판 등은 주변에서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이날 여자친구와 쇼핑을 나온 김모(21)씨는 “막연히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실제로 설치된 모습을 보니 사생활을 감시당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각종 CCTV 운영 관련 법령 중 가장 잘 지켜지지 않는 분야는 안내판 설치에 대한 부분이다. 개인정보보호법 시행령 25조에 따르면 영상정보처리기기를 설치·운영할 경우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안내판을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대다수 CCTV는 안내판 자체가 없거나 설치 위치와 동떨어진 곳에 붙어 있어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또 안내판에는 설치 목적 및 장소, 촬영범위, 시간, 관리책임자 성명과 연락처, 이를 위탁받은 자의 명칭과 연락처 등을 기재해야 하지만 이 또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주택가나 빌딩 곳곳에 설치된 CCTV 안내판 상당수는 위탁받은 보안업체 회사명만 크게 써져 있고 도난 방지 등 간단한 사유만을 적고 있어 표지판인지 광고판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CCTV를 설치한 사업주 역시 촬영시간과 열람기록, 삭제기록 등을 모두 대장을 만들어 관리해야 하지만 이를 지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임모(32)씨는 “안내판 공지에 대해서는 본사에서 들었지만 CCTV 대장 관리는 처음 듣는다”고 말했다.

CCTV 운영 관련 법령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보다 관계당국의 소극적인 홍보 및 계도 노력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매장 외벽에 CCTV를 설치한 김모(54)씨는 “그런 법령이 시행되는지 전혀 몰랐다”며 “관공서나 운영업체 등 어디서도 그런 내용에 대해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씨처럼 개인정보보호법 시행령을 지키지 않고 CCTV를 설치·운영할 경우 최고 3000만원까지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개인정보보호법 시행을 담당하는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법령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아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그래서 현재 계도 활동을 더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인터넷진흥원 등 관련 인력 60여 명으로 전국에 설치된 250만 대의 CCTV에 대한 홍보 및 계도 작업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의문시되고 있다. 매장에 CCTV를 설치한 한 프랜차이즈 편의점 점장은 “본사 인터넷망을 통해 관련 내용을 공지받고 안내문을 새로 달았지만 다른 매장에서는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경우를 많이 본다”고 아쉬워했다.

박준우기자 jwrepublic@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