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란 무엇인가 / 대니얼 돌링 지음, 배현 옮김 / 21세기북스

‘꽃을 추려 꽃다발을 만들었을 뿐, 꽃다발을 묶은 끈 말고는 내 것은 없다네.’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1533~1592)의 말이다. 이 얼마나 진솔한 고백인가. 꽃다발을 만들었다고 해서 누가 꽃을 자신이 만들어냈다고 주장하겠는가. 하지민 이처럼 당연한 진술도 현대사회에선 통용되지 않는다. 꽃다발을 손에 쥔 이들이 꽃까지 자신의 ‘제품’ 또는 ‘업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다시 말해 꽃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비유적으로 설명하자면 바로 이 명제에 관한 내용이다. 모든 재화(財貨)는 근본적으로 사회적 생산물이다. 하지만 재화를 차지한 이들은 결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당연히 소유권을 갖고 있는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에서부터 불의(不義)는 시작된다.

저자에 따르면 불의를 떠받치는 원칙은 다섯 가지다. ▲엘리트주의는 효율적이다 ▲배제는 필수적이다 ▲편견은 자연스럽다 ▲탐욕은 좋은 것이다 ▲절망은 불가피하다 등이다. 엘리트주의, 배제, 편견, 탐욕, 절망이야말로 불의를 떠받치는 다섯 기둥이다. 이를 좀 더 상세하게 들여다보자.

우선 엘리트주의. 권력자들은 교육적 분리를 자연스럽게 형성하기 위해 엘리트주의를 지향한다. 학생들이 상류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해 심하게는 사회에서 배제되도록 한다. 시험으로 결정된 점수와 순위는 사람들을 편견에 빠지게 하며, 스스로 불안과 절망을 느끼게 만든다. 당연히 권력자들은 강제적이면서도 비효율적인 서열 매기기를 지속시킨다.

그다음 배제. 2차 세계대전 후 서구 국가들은 국민에게 개인적 소비나 사회보장을 위한 자원을 제공했다. 처음엔 궁핍 철폐를 목표로 삼았으나 점차 국가적 관심은 배제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부자들에게 낮은 세율을 부과하고, 극빈자를 위한 사회보장 혜택을 줄여 빈부 간 소득격차를 벌렸다. 결국 배제를 통해 부자와 빈자가 서로 다르게 보이도록 함으로써 많은 이들이 의욕을 잃고 절망에 빠지게 됐다.

또한 편견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권력자들은 막대한 재산을 세습하기 위해 자녀들이 좁은 범위 안에서 배우자를 선택하도록 한다. 이 과정에서 인종 차별은 당연한 것이고, 계층적 차별 역시 자연스레 여겨진다. 권력자들이 만들어내는 편견 때문에 사회적 불평등은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사회의 결속력은 약해진다. 아울러 탐욕을 부추긴다.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유명인의 풍족한 삶을 자주 접하게 되는 대중은 끊임없이 소비욕구에 시달린다. 유명인의 삶을 보면서 그 모습을 따라하게 되고 허황된 욕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절망은 이로 인한 당연한 귀착점이다. 경제적 삶의 수준이 나아진 반면 우울증 또한 급증했다. 흔히 ‘부자병’이라고 부르는 정신 질환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는 무한경쟁 패러다임이 불러온 결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안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경제적 불평등이 건강상 불평등까지 초래한 것이다. 저자는 “불의가 강하게 지속되는 곳은 우리 마음속”이라며 “불평등과 절망을 조장하는 탐욕, 편견, 배제, 엘리트주의를 더 이상 용인하지 않는 행동이 필요하다”고 결론 내린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