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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 인 부에노스아이레스 / 박종호 지음 /시공사

귀보다는 발을 위한 ‘영화 같은 음악’이 탱고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열정과 관능, 유혹의 탱고리듬은 온 몸을 달뜨게 한다. ‘대박’의 꿈이 깨진 초기 남미 이민자들의 노동과 체념에 찌든 삶이 녹아 있다. 격렬함과 외로움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추는 춤이 탱고인 것이다.

재즈가 흑인의 애환을 담은 북아메리카의 대표 음악이라면, 섹시하면서도 우수에 찬 탱고는 남아메리카의 현대문화를 압축하고 있다. 재즈와 탱고 모두 뛰어난 아티스트의 예술적 영감을 딛고 고급 음악 장르로 올라섰다는 공통점이 있다. 재즈 대중화와 함께 국내에 재즈 관련 서적이 봇물을 이뤘지만 대형 서점에서조차 탱고에 관한 책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정신과 의사 출신의 오페라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이제 많은 예술애호가를 팬으로 거느리고 있다. 그가 탱고의 발원지인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탱고 여행을 떠났다. 클래식과 오페라 등 예술 문화의 안내자이자 멘토 역할을 해왔던 저자가 이번에는 탱고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책에 따르면 ‘탱고 추는 남녀를 유심히 바라보면 어느 순간에나 여자는 거의 한 발’이다. 남자에 밀착된 그녀의 몸은 내내 남자에게 기대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저자는 유혹과 스타일의 아이콘이 된 탱고를 통해 “사람은 혼자 살기 힘들고, 사람이 누군가를 만나서 인생의 탱고를 춘다면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다리 하나를 들 수 있다”는 사랑의 의미를 되새긴다.

탱고는 약 100여년 전인 1900년 전후에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많은 유럽인들이 돈을 벌기 위해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건너갔지만 부두 노동자들이 돈 버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사내들은 외롭고 괴로워서 자기들끼리 껴안고 춤을 췄고, 이것이 탱고 발생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유곽을 찾은 남자들이 육체의 위로를 받았지만 마음의 허전함을 주체할 길이 없어 자기들끼리 탱고를 추었던 것이다.

“내 친구들은 이제는/ 나를 보러 오지도 않아요./ 아무도 고통 속에 있는 나를/ 위로해 주지 않네요.”(탱고곡 ‘라 쿰파르시타’에서)

책 중간마다 ‘외로움’ ‘카미니토’ ‘내 사랑 부에노스아이레스’ ‘라 쿰파르시타’ 등 유명한 탱고의 가사 번역문 12곡이 실려 있다. 저자는 제대로 된 탱고 기행을 맛보려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산 텔모와 라보카를 찾아야 한다고 썼다. 탱고는 발전을 거듭해 때로는 시어를 가진 노래가 됐고 때로는 근대화에 저항하는 아이콘이 됐다. 그 가운데 영화 ‘여인의 향기’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으로 유명한 ‘포르 우나 카베사’ 등 탱고의 명곡들이 탄생했고, 걸출한 탱고 가수인 카를로스 가르델이 등장했다.

책의 탱고라는 프리즘을 통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역사와 만나고 남미 문학과도 조우한다.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대표주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노벨 문학상 수상자 파블로 네루다를 통해 탱고를 만들어낸 스페인어권 문화의 뿌리와 저력을 파헤친다. 또한 책은 연주를 위한 탱고음악의 발전사도 꿰고 있다.

‘리베르탱고’의 작곡자인 아스토르 피아졸라는 탱고와 클래식이 혼합된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냈고 이는 답보상태에 빠진 클래식 음악계의 활력소가 됐다. 피아졸라 이후 클래식 콘서트에서 탱고 음악이 레퍼토리로 등장하는 것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책은 극장식 공연을 보여주는 대형 무대부터 무용수가 손님 탁자 바로 옆에서 춤추는 소박한 장소까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유명 탱고바와 클럽을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예진수기자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