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델이 묻는다 ‘돈으로 도덕을 살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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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 와이즈베리

부모들이 어린이집에 맡겨둔 아이들을 제시간에 데리러 오지 않는 일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이스라엘의 한 어린이집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벌금제도를 도입했다. 과연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오히려 부모들은 더 늦게 데리러 왔다. 사람은 인센티브에 반응한다고 믿는 일반 경제학의 논리에 비춰본다면 매우 당황스러운 결과다. 벌금 제도가 아이를 늦게 데리러 갈 때 느끼던 죄책감을 없애 주는 ‘면죄부’ 역할을 한 것으로, 부모들은 벌금을 마치 요금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면 벌금과 요금의 차이는 무엇일까. 저자에 따르면 벌금은 도덕적으로 승인 받지 못하는 행동에 대한 비용인 데 비해, 요금은 도덕적 판단이 배제된 단순한 가격일 뿐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우리나라에 정의론 열풍을 몰고 왔던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쓴 이 책은 시장지상주의의 맹점을 파헤치며 시장과 도덕의 관계를 파고든 역작이다.

저자는 최근 수십 년 동안 우리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 사회가 시장경제(market economy)에서 시장사회(market society)로 옮겨갔다고 진단한다. 시장경제에서 시장은 재화를 생산하고 부를 창출하는 효과적인 ‘도구’인 반면, 시장사회는 시장가치가 인간 활동의 모든 영역으로 스며들어간 일종의 ‘생활방식’이다.

샌델은 앞서 언급한 어린이집의 사례처럼 기존에는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았던 영역에 돈과 시장이 개입하며 발생한 가치의 변질에 주목한다.

아이들의 성적 향상을 위해서 아이가 책을 읽을 때마다 약간의 돈을 주는 것은 어떨까. 단기적으로 아이의 독서량은 늘어나지만 아이는 독서를 돈을 벌기 위한 수단쯤으로 생각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노벨상에 대한 저자의 다음과 같은 언급은 돈이 가치를 변질시키는 단적인 사례다.

“노벨상 하나를 경매로 판매한다 하더라도, 이렇게 돈을 주고 산 상은 진짜 노벨상과 같지 않다. 시장 교환은 노벨상을 가치 있게 만드는 선(善)을 변질시킬 것이다. 노벨상은 명예로운 재화이기 때문이다. 이를 사는 행위는 상에서 얻으려는 선을 훼손한다. 노벨상이 거래됐다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수상자는 더 이상 명예를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불평등하거나 강압에 의한 거래만 아니라면 시장을 통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모두에게 이로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샌델은 성(性)·입학자격·환경·교육 등 전통적으로 비시장 규범의 지배를 받아 돈으로 구매해서는 안 되는 영역까지 돈으로 사고팔면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덕적 가치가 밀려난다고 반박한다. 즉 시장의 교환은 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재화의 가치를 변질시키게 된다는 말이다.

결국 저자가 책을 통해 역설하려고 하는 점은 ‘돈으로 사려 해서는 안 되는 것들’ ‘돈으로 사게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묻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저자는 시장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장의 자율규제와 정부 감독이 제대로 이뤄진다 해도 시장 거래가 삶의 방식과 사고방식, 도덕적 가치를 훼손하고 변질시킨다면 효율성이란 이름 아래 이를 허용해선 안 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지난 세월 무엇이 도덕의 영역이며 어디까지 시장에 맡겨도 좋은지 생각할 기회 자체가 적었다고 고백하며 시장의 무한한 확장에 속절없이 당할 것이 아니라 공적 토론을 통해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책은 시장지상주의가 갈수록 확대되고 사회의 모든 영역에 시장 논리가 지배하는 한국사회에도 경종을 울린다.

이 책을 감수한 김선욱 숭실대 교수는 “지난 몇년간 한국 사회에 깊이 드리워진 그림자는 경제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는 정치의 참 의미를 망각한 채 국가의 부를 좀 더 늘리면 시민들이 행복해질 것이라는 정치가들의 잘못된 믿음에서 비롯됐다”며 “온건하지만 큰 물결을 일으킬 수 있는 귀중한 지혜가 담긴 이 책이 우리의 현실을 진단하고 고민해보는 데 적절한 역할을 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김도연기자 kdych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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