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눈 / 플로리안 하이네 지음, 정연진 옮김 / 예경

프란시스 고야(1746∼1828)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1774∼1840)는 동시대 화가지만 작품세계는 전혀 달랐다. 스페인 화가 고야의 그림이 기록사진처럼 직접적이며 명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면, 독일 화가 프리드리히의 그림은 뚜렷한 메시지보다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하는 감성적 이미지를 담고 있다.

프리드리히의 1817년작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에는 불쑥 튀어나온 바위에 올라 산과 바다의 풍경을 감상하는 한 사나이뿐이다. 반면 고야의 1814년작 ‘1808년 5월3일, 저항세력 처형’에선 인간성이 상실되는 전쟁의 참상을 통해 전쟁과 폭력의 잔인함을 적나라하게 묘사됐다.

‘프랑스에 점령당한 조국’이라는 두 화가의 정치적 배경은 동일했으나, 그림 속 시대상의 묘사는 판이했다. 스페인 왕실의 궁정화가로서 고야는 왕실가족의 초상화를 그리는 한편, 참담한 현실이 반영된 극적이고 어두운 그림이며 생생한 묘사로 전쟁의 비인간성, 반전의 메시지를 묘사했다. 반면 프리드리히는 “단순히 눈앞에 보이는 것뿐 아니라 자기 안에 보이는 것도 그려야 한다”며, 다양한 풍경을 재구성한 주관적이고 시적인 풍경 속에 당시 불안한 독일의 정치상황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펼쳤다.

“예술에 정해진 규칙이란 없다”는 고야의 명언처럼, 보고 경험하고 느끼는 세상과 생각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려는 예술가의 시선은 각기 다르고 또 특별하다. 사진작가로도 활동 중인 독일인 저자는 명화에 등장한 자연과 도시를 직접 찾아다니며 화가의 눈으로 풍경을 재해석한다.

저자는 명화의 배경지, 한때 화가의 시선이 집중됐던 바로 그 현장에서 화가별로 간략하게 삶과 작품세계를 재조명한다. 명화속 풍경과 현재의 사진을 대조하며 저자가 인도하는 미술세계로 들어서는 가운데 흥미로운 시각적 볼거리와 간략한 작가론과 작품론에 빠져들게 된다.

이 책에서 다뤄진 미술거장은 21세기의 독일사진작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를 포함해 중세부터 현대작가까지 21명. 고야가 ‘1808년 5월3일, 저항세력 처형’을 그린 스페인 마드리드, 프리드리히가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를 그린 독일 작센 지방 등 유럽 각지를 배경으로, 21명 화가의 작품이야기가 펼쳐진다.

엘 그레코의 1610년작 ‘톨레도풍경’속 스페인 톨레도, 벨라스케스의 1630년경 작품 ‘로마 메디치 빌라의 정원’ 속 이탈리아 로마의 자연과 도시도 저자가 직접 촬영한 현재 사진과 더불어 등장한다. 프랑스 엑상프로방스에서 폴 세잔의 ‘생트 빅투아르’를, 독일 도르트문트에서 사진작가 구르스키의 2006년작 ‘메이데이 5’가 오버랩된다. 프랑스 파리는 19세기말 카유보트의 ‘비오는 파리거리’와 쇠라의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에서 각기 다른 이면을 드러낸다.

신세미기자 ssem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