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치 / 제임스 하킨 지음, 고동홍 옮김 / 더숲

‘니치(Niche)’는 틈새를 뜻한다. 틈새시장이라는 의미의 ‘니치 마켓’은 예전부터 사용돼 왔다. 니치는 오랫동안 주류 시장의 틈바구니에서 단순히 생존만을 추구하는 주변적이고 소극적인 개념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니치의 개념은 주류의 틈바구니에서 생존하기 전략으로서의 니치가 아니다. 저자는 향후 기업과 조직, 사회 모든 분야에서 니치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는 새로운 환경으로 변화했다고 분석한다. 나아가 이런 변화의 가장 큰 이유로 기존 중간층의 소멸과 함께 사회가 ‘획일적인 대중’에서 ‘잡식성 대중’으로 변모했다고 지적한다.

지금 우리는 과테말라 커피와 향이 풍부한 자바산 커피, 감미로운 케냐 브랜드 사이의 차이점에 대해 알기를 열망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 결과 모든 것을 다하려고 하는 기업과 조직은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대상이 돼 쇠락해버린다. 다시 말해 “모든 이의 마음을 사로잡고자 하면 어느 누구의 마음도 얻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곧 이 책의 요지다.

전반적인 사회 트렌드를 분석, 앞날을 예측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보여온 저자는 책에서 새로운 틈새시장을 개척, 성공으로 이끈 사례들을 풍부하게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스타벅스는 천편일률적인 상품이 될 뻔했던 커피를 맛으로 가치를 평가받는 상품으로 변모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고급 커피에 대한 대가로 후하게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는 열렬한 커피 애호가들을 끌어들인 것이다. 인스턴트 커피 판매 실적이 계속해 떨어지고, 주류 커피 산업이 하향세를 타는 동안 스타벅스를 선두로 한 커피 전문점들은 커피 원두 판매를 연간 30%씩 성장시켰다.

전 세계적으로 열광적인 지지자들을 거느린 몰스킨은 또 어떤가. 몰스킨은 21세기 아방가르드와 관련된 위대한 예술가들과 작가들이 같은 종류의 노트를 사용해서 스케치를 하거나 초고를 작성했다는 사실에 착안, 지금과 같은 성공에 이를 수 있었다. 마티스의 스케치북, 피카소의 스케치들이 그려진 조그만 노트,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앙드레 브르통의 일기장을 주목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몰스킨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모든 것이 새롭게 다시 만들어지고 있고, 주류의 뼈다귀에는 야금야금 갉아먹을 살코기들이 무수히 남아 있다고 강조한다. 새로이 안착한 업체들은 대부분 고객층의 속성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 대신 제품이 가진 독특한 특성에 열광하는 청중들을 꾀어낸다. 주류 바깥에 있는 그들의 공간을 먼저 선점했기 때문에 거대 기업들에 의해 고안된 틀과 일정에 맞출 필요가 없다. 작품을 편집하거나 특성을 제거할 일 또한 없다.

저자는 “여러 부류의 대중을 끌어들이기 위해 브랜드에 광을 내는 작업 대신, 니치버스터(Nichebuster·틈새시장 주도제품)들은 독특한 뭔가를 만드는 일에 더 세밀하면서도 깊숙이 파고든다”면서 “그러고 나서는 역량을 총동원해서 비교적 소규모의 애호가 집단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주류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우리끼리만’ 무리를 이루고 있다는 느낌, 즉 소속감을 조성하는 것이야말로 성공에 이르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