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나라는 왜 여전히 가난한가 / 에릭 라이너트 지음, 김병화 옮김 / 부키

“우리는 경제적 조화를 신에 의해서건 수학적인 것에 의해서건 이미 예정된 자동적인 결과로 보는 이론에서 벗어나, 조화로운 경제는 의식적인 정책의 산물이라는 이론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 책의 결론이자 요지다. 저자는 고등학교 시절 안데스 지역의 학교 건립을 돕기 위해 페루에 갔다가 그곳 사람들의 빈곤에 충격을 받고 ‘가난한 나라는 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를 근 40여 년에 걸쳐 끈질기게 연구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지난 500년에 걸쳐 실질적으로 유럽의 경제 발전을 이끈 소중한 경제학 지식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책은, 유럽이 경제 발전의 비결을 어떻게 알아냈는지, 경제 발전에서 영국은 성공 모델이 되고 스페인은 실패 모델이 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스페인의 제조업은 16세기 이후 몰락을 거듭해 18세기에는 거의 완전히 무너졌다. 스페인 제조업의 몰락은 당시 전 유럽의 연구 대상이었는데 그 결론은 한결같았다.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되고 엄청난 양의 금과 은이 스페인으로 흘러들어 왔는데 이런 막대한 재원이 생산 시스템에 투자되지 않고 스페인의 탈(脫)산업화로 이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떤가. 세계화된 요즘의 국가에서도 빈번히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닌가.

저자는 아울러 이런 역사적 사실 자체를 주류 경제학은 어떻게 은폐했는지, 그 결과 가난한 나라에서 어떤 참상이 빚어지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펼쳐 보인다. 신고전파 경제학자들, 즉 오늘날의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가난한 나라들에 산업보호 대신에 개방과 자유무역, 탈규제를 강요했다. 그 결과는 처참했다.

예를 들어 1990년대 중반 에콰도르는 선진국들에 사기를 당하다시피 했다. 바나나 생산의 효율이 세계 최고였던 에콰도르는 바나나 생산을 특화하고 산업 관세를 폐지하면 원조를 해주겠다는 선진국들의 약속을 믿고 산업 관세를 없앴다. 그러자 유럽연합(EU)은 에콰도르산 바나나에 무거운 수입관세를 물렸다. 이는 유럽에 속하는 그리스와 과거 유럽의 식민지였던 카리브해 연안 국가 바나나 생산자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 게다가 에콰도르에 약속했던 원조마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럼, 현재 개발도상국에서 벗어나 경제 발전에서 일정한 성과를 낸 우리에게 이 책이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우선 국가 간 빈부 격차를 국내로 치환하면 현재의 소득 양극화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이 된다. 세계화를 무한 경쟁으로, 자유 무역을 시장 경쟁으로 대치시키면 오늘날 가난한 나라에 적용되는 설명이 그대로 국내 빈곤층에 적용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제시되는 원인도 같다. 주류 경제학의 진단에 따르면 가난은 기업가 정신의 부족, 법적·제도적 미비, 개인적 약점에서 비롯된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종종 이율배반적 태도를 보인다. 오늘날의 경제 질서를 뒷받침하는 이론은 자유무역이 ‘요소 가격 균등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노동과 자본의 가격이 전세계에서 동일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제학자도 자기 자식에게 요소 가격 균등화가 곧 이뤄질 테니 변호사나 의사가 되는 것보다 ‘비교 우위’를 누릴 수 있는 접시닦이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고 권하지는 않는다. 주류 경제학자들도 어떤 경제활동을 선택하느냐가 자녀들의 생활수준을 정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그러나 바로 그 경제학자들이 국제적인 차원에서는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 모두가 선진국들이, 그리고 주류 경제학자들이 자신들의 개발도상국 시절을 완전히 잊은 탓인지도 모른다. 우리 역시 경제 발전이 이뤄지기 전의 기억을 서서히 망각해가고 있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우리를 다시한번 일깨운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