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점점 많은 동물들이 집중적인 농업이 이뤄지는 농촌을 떠나 살기 편한 도시로 몰리고 있다. 이랑 제공

자연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요 / 제프 H 라이히홀프 지음, 박병화 옮김 / 이랑

인류는 다른 어떤 동물보다 유난히 눈에 의존하는 ‘시각동물’이다. 멀리 떨어져 있는 대상을 구분하기 위해 인류는 오래전부터 눈에 의존하는 능력을 키워 왔다.

시각동물인 인류가 색을 구분할 줄 알고, 특히 적색과 녹색을 구분하는 것은 다른 동물은 갖고 있지 못하는 특별한 능력이다. 당분과 영양분이 풍부한 열매는 익으면서 녹색에서 적색으로 변하거나 불그스레한 색을 띤다. 무르익은 열매의 색깔을 구별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은 곧 열매를 손쉽게 얻을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포유류 중 유일하게 색깔을 구별할 줄 아는 인류는 이 같은 이유로 오래전부터 꽃의 선명한 색깔 역시 좋아하게 된 것이다.

독일의 진화생물학자인 저자는 사람들이 꽃을 좋아하는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저자는 또 꽃이 완전한 대칭 형태를 갖고 있는 것도 사람들이 꽃을 좋아하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꽃의 완전한 대칭 형태를 사람들은 건강의 표시로 받아들이고 더욱 호감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듯 사람들에게 너무도 익숙해 지나치기 쉬운 주제부터 동식물의 생태, 종의 다양성이 형성된 과정, 인간의 본성 탐구에 이르기까지 생명체의 진화에 숨겨진 비밀 51가지를 생물학, 생태학, 지리학, 의학, 화학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새로운 시각에서 풀어낸다.

저자는 이전의 저서 ‘지난 1000년간의 간추린 자연사’를 통해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과거의 온난기는 인류와 자연에 유용했기 때문에 기후온난화는 재앙이 아니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과거의 온난기는 다양한 종의 출현을 가져왔으며 수확은 풍부해졌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는 것이 요지다. 저자는 이 책에서도 어김없이 도발적이고 파격적인 분석을 내놓는다. 도시가 동식물 생존에 야생보다 더 적합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는 분석이 대표적이다.

베를린 한복판에 여우가 출몰하는 풍경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호화롭게 꾸민 테라스에서 여우가 한가롭게 햇볕을 쬐기도 하고 정원에 설치된 그네식 흔들의자를 사람과 같이 쓰기도 한다. 베를린 도심에서 여우가 왜 이렇게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게 된 걸까.

과거 여우는 광견병을 옮기는 매개 동물로 눈총을 받았지만 바이러스 예방접종 덕택에 광견병 면역력을 갖게 된 게 결정적인 이유란 게 저자의 설명이다. 여우는 대낮에도 시내 한복판을 돌아다니며 쥐를 잡고 주택가와 공원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주워 먹으며 도시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영국에서는 심지어 여우가 도시에 서식하는 것이 ‘다채로운 멋’을 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베를린에만 수천 마리가 살고 있다는 멧돼지도 비슷한 맥락이다. 영리한 여우와 마찬가지로 멧돼지도 도로 교통에 적응해 빨간불에만 길을 건너가고 새끼들도 떼를 지어 몰려다닌다. 멧돼지가 이처럼 도시 생활에 적응하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 먹이가 숲에서 점점 사라졌기 때문이다. 멧돼지는 숲에서 도토리와 너도밤나무 열매를 먹고 살았지만 점점 양이 줄어들면서 도시로 ‘진출’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도시는 종이 점점 풍족해지는 반면 농촌은 종이 빈약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농경지에 지나치게 많은 화학 비료가 투입되면서 점점 동식물의 다양성이 떨어지게 됐다는 것이다.

이밖에 사람들이 특정 동물만을 식용으로 키우는 이유, 인류의 피부색이 서로 다른 이유, 왜 뻐꾸기의 수가 줄어들었는지, 사람이 어떻게 개와 가까워지게 됐는지, 줄무늬가 있는 말이 출현한 과정 등에 대한 분석도 흥미롭다.

얼핏 보면 주제가 제각각이고 한 편당 길이도 짧은 것 같지만, 눈 밝은 독자라면 모든 이야기가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다.

책은 동물이나 식물처럼 눈에 보이는 자연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인류의 고유한 특성에 관해 설명하기도 하고 별개의 이야기들을 모아 진화론의 주제로 넘어가는 등 모처럼 읽는 재미를 더해주는 역작이다.

김도연기자 kdy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