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밥상여행 / 손현주 지음 / 앨리스

이제 독자들은 미디어의 ‘맛있는 집’ 소개 따위를 잘 믿지 않는다. 그게 꼭 ‘은밀한 거래의 개입’에 대한 의혹 때문만은 아니다. 그런 의혹이야 있을 수 있겠지만, 실제 거래가 개입되는 건 극히 드문 경우에 속한다. 그렇다면 이런 불신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그건 아마도 ‘차고 넘치는’ 정보 때문이리라. 인터넷 검색창에 단어 몇 개만 쳐넣으면 맛집 관련 기사부터 개인 블로그 글까지 족히 백과사전 한 권 분량이 될 만큼의 정보가 뜬다. 정보가 홍수를 이루니 정작 믿을 만한 정보를 가려내기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하기야 입맛이라는 것도 제각각일 터이니, 애초부터 남의 입맛을 빌려 평하는 내용을 다 믿을 수 없는 노릇이기도 하겠다.

그런데 이 책은 다르다. 우선 저자는 ‘맛의 감별사’라도 되는 양 젠체하지 않는다. 차분한 여행기와 함께 맛깔난 음식을 소개하되 호들갑스러운 칭찬이나 낯간지러운 수사는 없다. 대신 음식을 내는 이의 투박한 손과 그들이 겪었을 삶의 역정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이들이 차려낸 밥상 앞에서 자신이 왜 이곳까지 오게 됐는지, 그 음식 앞에서 어떤 마음을 갖게 되는지를 풀어낸다. 간혹 옆 테이블에 앉은 다른 손님을 관찰하기도 한다. 문장은 간결하되 묘사는 감각적이고 예화는 풍성하다.

예컨대 책의 가장 첫머리에 등장하는 한 식당에 대한 묘사를 보자. 저자는 매화꽃 피는 봄날, 아이를 업은 여자가 섬진강변의 식당에서 재첩국수를 먹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걸 보고 저자는 ‘(여자가) 강으로 은비늘처럼 쏟아지는 볕을 바라보며 국수를 후루룩후루룩 먹고 있다’고 썼다. 그러고는 “낭만이라는 것은 오므라졌던 꽃잎 열릴 때 국수 한 그릇 덩그러니 앞에 놓고 혼자 멀뚱하니 강을 바라보는, 그 하찮은 일상에서 나오는 법”이라고 주장한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이런 글을 읽다 보면 봄볕이 반짝이는 섬진강변에서 국수 한 그릇을 앞에 놓고 싶은 심정이 왜 들지 않을까. 이럴 때 국수가 좀 맛이 없기로서니 그게 무슨 문제가 될까.

전남 구례 시골 장터 대폿집에서 가오리찜이나 돼지족탕을 시켜 놓고 지리산 막걸리를 맛보라든지, 계란 다섯개를 한번에 부쳐낸 프라이가 서비스로 나온다든지 하는 저자가 들려주는 소소한 이야기들은 정보 차원을 넘어 허름한 장터 선술집의 분위기를 실감나게 전해 준다. 그렇다고 저자의 평가가 늘 후한 것은 아니다. 미식가들이 칭찬해마지 않는 섬진강의 ‘참게탕’을 놓고는 ‘텔레비전에 나왔다고 온 벽에 발라 놓은 문구들은 사카린처럼 달았고, 음식도 값싸게 달았다’며 ‘한방’에 보내 버리기도 한다.

이쯤이면 이 책이 맛집을 두루 헤집어 소개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여행기와 함께 음식을 차려내는 이들과 그 음식을 대하는 손님의 정서, 혹은 맛있는 음식이 위로하는 순간들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책에는 ‘놓치면 아까운 밥집’의 상호와 전화번호 주소가 곁들여지고 사진찍기 좋은 곳이나 지역의 특산물들도 간결하게 소개돼 있긴 하다. 그러니 꼭꼭 숨어 있던 비장의 맛집 정보를 알기 위해 책을 잡았다면 실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음식이란 이렇게 접근하는 게 훨씬 정직하다.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