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회평/논설위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이후 동북아(東北亞) 지역은 차기 경제영토 격전지로 꼽힌다. 한·중·일 3국은 주요 경제국이면서도 인접국간 FTA를 체결하지 않은 거의 유일한 나라다. 그만큼 껄끄러운 변수가 많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젠 동상이몽 속에 저마다 FTA 합종연횡 구도를 짜고 있다. 한·중 FTA 협상 개시는 구체적인 첫 결과물이다.

키를 쥔 건 대한민국이다. 중국도, 일본도 한국에 FTA 구애 공세를 펴왔다. 중국의 경제패권화를 우려한 일본은 한국을 견제 장치로 삼으려 한다. 동시에 한미 FTA 효과 차단을 위해 미국을 중심으로 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를 전격 선언했다. 한·중·일+아세안 FTA를 구상해온 중국으로선 일본의 노선 변화로 한국이 더욱 절실해졌다. 한국 정부가 FTA 개시에 합의해준 건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까지 감안한 다중카드다.

일본·중국과는 이미 FTA 전초전을 치른 경험이 있다. 애초에 주요 교역국 가운데 첫 FTA 상대는 일본이었다. 2003년 첫 협상이 열린 이후 일본측은 자국에 유리한 공산품 개방에만 열심일 뿐 농산물 쪽엔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6차 협의까지 진행한 후 결렬을 선언하고 미국으로 눈을 돌렸다. 중국과는 2006년 상무부장의 방한을 계기로 실무 접촉이 이뤄졌다. 핵심 쟁점인 민감 품목 제외 비율을 10%로 하는 구체 방안까지 제시됐으나 노무현 정부 내 신중론자들의 반대와 이어 터진 북한 핵실험 등으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당시 양국에 밀렸던 한국이 유리한 입지로 바뀐 건 한·미, 한·EU FTA 비준에 따른 선점 효과의 일단이다.

동북아 3국간 FTA 논의는 현재 한·중, 한·일, 중·일 등 양자간 FTA와 3국 통합 패키지인 한·중·일 FTA라는 투 트랙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느 쪽이 더 유리한가. 일단 한·중·일 FTA는 후순위로 미뤄놓는 게 득책이다. 한·중·일 인접 3국은 경제발전 단계에 따라 산업구조가 상호 분업 형태로 연결되는 특색을 갖는다. 양자 협상과 달리 3국이 한 데 얽히면 한국은 중간자의 이점을 누리기보다는 양쪽 모두로부터 불이익을 받을 소지가 크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에서도 일본·중국과 달리 한국은 개별 협상을 우선 거치는 게 경제효과가 더 크다고 나와 있다. 다만 일본과의 FTA는 현 시점에서 별 실익이 없다는 게 중론이다. 부품·소재 분야가 강한 일본에 더 종속될 수 있고, 농산물 관세를 없앤다 해도 특유의 비관세 장벽을 넘기 어려워서다. 결국 한·중 FTA가 1차 순서인 건 맞다.

문제는 중국을 상대로 최대한 얻어내는 일이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경제영토는 분명 매력적이지만 그렇다고 덥석 삼키기엔 리스크가 크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다. 무역 장벽이 제거되면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 소비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FTA로 기대되는 경제 효과도 미국이나 EU에 비해 두세 배는 된다. 하지만 역으로 지금도 우려하는 대중국 경제 의존도는 급속도로 심화될 것이다. 중국 경제가 경착륙하면 후유증을 겪을 수 있다. 더구나 중국 농산물이 쏟아져 들어온다면 농가의 타격은 과거의 FTA들에 비할 바 아니다. 경공업 분야에서도 중국 제품은 가격·품질 경쟁력을 고루 갖추고 있어 국내 산업 피해도 예상된다. 그래서 양날의 칼이다.

결국 관건은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전략이다. 농수산물이나 섬유·운송장비·가공식품 등 민감 품목의 개방을 최대한 줄이고 늦춰야 한다. 정부가 민감 품목 위주로 협상하는 1단계가 끝난 후에나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게 일정을 관철한 것은 타당하다. 한국 입장에선 굳이 서두를 이유도 없다. 중국이 한국을 FTA 상대로 꼽은 건 경제효과뿐 아니다. 미국과 일본 주도의 동아시아 영향력 확대 움직임을 견제하려는 의도다. 한국으로선 양쪽의 역학관계를 협상에 이용할 여지가 있다. 일종의 꽃놀이패다. 그런 만큼 중국이 민감 품목에 대해 자국의 이익만 챙기려 들 경우 몇 년이 걸리든 초조해할 이유가 없다. 협상 흐름을 예리하게 주시하면서도 우직하게 가는, 호시우행(虎視牛行)의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