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해피뮤지컬스쿨 5기생들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 역삼1동문화센터 4층에서 오는 2월20일에 있을 졸업작품 발표회를 앞두고 노래연습을 하고 있다. 신창섭기자 bluesky@munhwa.com

영화감독 스티븐 달드리는 가난한 탄광촌 출신 소년 ‘빌리 엘리어트’가 발레리노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이유를 ‘감동’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그 모습을 통해 관객들은 자신이 어린시절 겪었던 유사한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역삼1동문화센터 4층에서 만난 17명의 해피뮤지컬스쿨 5기생들도 뮤지컬계의 ‘빌리 엘리어트’를 꿈꾸는 10대들이었다. 이들은 음악과 연기, 무용 등에 관심이 많지만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제대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는 소외계층 아이들 중에서 선발됐다.

#연기하고 = 오후 12시30분쯤부터 모이기 시작한 아이들은 1시가 약간 지나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갔다. ‘제니와 두리가 들려주는 엄마나라 이야기, 아빠나라 이야기’라는 새 대본을 받아든 아이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베트남 태생인 제비 ‘제니’와 한국에서 태어난 비둘기 ‘두리’를 통해 다문화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내용이었다. 이 작품으로 오는 2월20일 졸업공연을 해야 하는 아이들은 금방 나온 따끈따끈한 대본을 훑어보다 곧바로 리딩(reading)에 들어갔다. 그런데 낙엽이 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음이 나오는 10대라서 그럴까. ‘아, 거참 더럽게 짹짹거리네’, ‘뭐 이, 일본 앞 제비야’ 등 조금만 우스꽝스러운 표현이 나와도 여기저기서 ‘까르르’ 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문화예술교육협회(이사장 허찬녕)는 소외계층 청소년들을 위해 2007년부터 무료로 해피뮤지컬스쿨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들의 얼굴 어디에서도 어두운 그늘을 찾아볼 수 없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다 학교와 가정에서 얽히고설킨 관계 때문에 주눅이 들 법도 한데 연신 웃으며 재잘거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영욱(18)군은 “이곳에서 뮤지컬을 배운 후로 학교에서 친구가 한 명 생겼다”며 “그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 정도로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하군은 태어날 때부터 오른쪽 귀가 들리지 않았고 왼쪽 귀도 중학교 2학년 때 급성 난청 판정을 받는 등 청각장애를 앓고 있다. 학교를 남들보다 1년 늦게 들어가고 그동안 친구를 사귀지 못했던 것도 장애 때문이었다.

A(17)군은 부모님이 이혼하고 할머니까지 돌아가신 후 아버지와 살면서 아버지에게 맞는 날이 많았다. 이 때문인지 A군도 학교에서 폭력상담을 받기도 했다. A군은 “저는 좋아서 그런 것인데 친구들이 보기에는 과격했던지 폭력상담까지 받았다”며 “뮤지컬을 배우면서 학교 선생님들이 저보고 많이 차분해졌다는 얘기를 한다”고 말했다. A군에게 뮤지컬을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아버지가 먹고살기 힘든 스트레스를 아이에게 과하게 풀다 보니 아이가 타인에게 애정표현을 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며 “그동안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기를 봐달라는 식으로 많이 행동했는데 지금은 아주 좋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춤추고 = 약 1시간 30분간의 리딩 후 이어진 무용수업. 어설프게 발레의 기본동작인 ‘파도브레’를 따라하는 아이들의 얼굴에선 송골송골 식은땀이 맺혔다. 특히 파도브레턴을 할 때는 휘청거리는 아이들이 속출했다.

그러나 꿈이 ‘백댄서’인 B양은 맨 앞줄에 앉아 전혀 흔들림 없이 파도브레턴을 훌륭하게 해냈다. 그랬던 B양은 무용수업이 끝나자마자 현장에 있던 선생님들에게 “학원에 가야 한다”며 서둘러 가방을 들고 나갔다. 그러나 사실 B양은 학원이 아니라 시간당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수업이 끝난 틈에 먼저 일어선 것이었다. 부모님이 이혼하신 후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아버지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고 싶어서다.

하루 5시간씩 주3일 아르바이트를 해서 B양이 버는 돈은 한 달에 26만원. 이것으로 참고서도 사고, 용돈도 하면서 아버지에게는 돈 달라는 얘기를 해본 적이 없다. B양은 “집안 형편이 썩 좋은 편이 못 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해결하고 있고 제 꿈을 위해서도 조금씩 저축하고 있다”며 “이곳에서 뮤지컬을 배우면서 꿈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노래하고 = ‘이∼이∼이∼이∼이’, ‘이∼에∼이∼에∼이’. 디지털 피아노 소리에 맞춰 아이들이 발성연습으로 넘어갔다. 문화센터 4층 연습실을 오후 4시까지 빌린 터라 리딩에서 무용과 노래로 수업은 초스피드로 진행됐다. 배에 힘을 주는 대신 목을 쭉 빼고 소리를 지르는 아이, 악보에 코를 박을 정도로 고개를 숙인 아이 등 다들 제각각이었지만 5분, 10분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들은 제 음을 찾아갔다.

특히 이번 작품의 엔딩곡인 ‘함께 살아요’를 부르던 중에는 전지은(16)양의 노랫소리가 유난히 청아하게 들렸다. 전양은 키가 150㎝가 되지 않아 그동안 콤플렉스가 심했다. 그러나 전양은 “학교에서는 키가 작다고 놀림을 받기도 했는데 뮤지컬 무대에 서보니 노래하는 무대에서는 차별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현미기자 always@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