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서울시내 한 건물의 청소 노동자들이 천장이 주저앉을 듯한 지하의 휴게실에 모여 휴식을 취하고 있다. 김동훈기자 dhk@munhwa.com

새벽 공기가 유난히 차가웠던 지난 22일 오전 4시30분쯤 청소원으로 일하는 김모(여·52)씨는 집 앞 버스 정류장에서 첫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 5시 일터에 도착하면 김씨의 고된 하루도 시작된다. 직원들이 출근하는 8시 전까지 김씨와 10명의 청소원들이 청소해야 할 건물은 12층, 5000여 평(약 1만6528㎡)에 달한다.

한 사람당 한 층씩, 사무실과 복도 바닥 청소는 물론 화장실 청소, 쓰레기 수거와 분리까지 해내려면 숨 돌릴 틈도 없다. 새벽엔 난방이 되지 않아 차가운 물에 손을 담가야 하지만 한 층을 모두 돌고 나면 금세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김씨에게서 쾨쾨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하면 말끔히 차려입은 직원들이 하나둘 건물로 들어선다. 오전 8시 깨끗해진 건물에 햇살이 들어오면 김씨는 건물 내 유일한 쉼터인 ‘청소원 대기실’을 향해 지하로 발걸음을 옮긴다.

사람들이 ‘청소 아줌마’라 부르는 김씨는 10년 전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생계를 책임지면서 이 일을 시작했다. 매일 손에 달고 사는 락스 때문에 손은 습진으로 마를 날이 없었고 시력도 점차 나빠졌다. 아침점심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 오후 3시까지 늘 허리를 굽히고 쓰레기를 줍거나 바닥을 닦다 보니 척추측만증도 생겼다. 휴가는 꿈도 꿀 수 없는 주 5일, 하루 8시간 청소를 하며 받는 월급은 최저임금 수준인 65만원. 김씨는 “50이 넘은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라며 “용역업체 파견직으로 처음 2년 계약을 했다 1년을 연장했는데 내년에 업체가 바뀔 예정이어서 언제 잘릴지 모르는 상황이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가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반장’이라 불리는 관리직 동료와 구청 직원들로부터 받는 ‘감시’다. 구청 홈페이지나 사내 게시판에 이따금 청소부에 대한 민원이 올라오거나 분실물이 발생하면 말 그대로 비상이 걸린다. 시시때때로 지적과 평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짬을 내 편히 쉬지도 못한다. 5평(약 16㎡ ) 남짓한 지하 휴게실에서 쉬는 것도 눈치가 보여 화장실 쓰레기통 옆에 엉덩이만 붙일 수 있는 플라스틱 의자를 놓고 잠시 쉴 뿐이다.

24일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김씨와 같은 ‘청소 노동자’는 2008년 현재 37만7927명에 달한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56.3세로 40%가 60세 이상이며, 82%는 여성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이 대형 건물이나 관공서, 아파트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청소 아줌마’로 상징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청소원은 임금 노동자 중 네 번째로 종사자 수가 많다. 청소 업무는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필수적인 노동으로 꼽힌다. 하지만 대다수 청소 노동자들은 김씨처럼 고된 노동과 낮은 임금, 고용 불안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민간기업이 청소 노동자 대부분을 용역·파견 등 간접고용으로 전환하면서 노동환경 또한 열악해진 탓이다.

같은 날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의 한 빌딩에서 만난 청소 노동자 허경례(여·56)씨 또한 최저임금 수준인 한 달 46만원을 받으며 빌딩 1~4층 전체를 청소하고 있었다. 이 건물에는 청소원을 위한 좁은 휴게실조차 없어 허씨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계단에서 ‘쪽 휴식’을 취해야 한다. 그는 “남편과 사별한 뒤 외아들을 혼자 키워야 해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지만 기술도, 경력도 없는 50세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청소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월급 인상이나 처우 개선을 요구하거나 노조 가입을 생각해 본 적은 없느냐는 질문에 “파리 목숨인 내게 그런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잘리지만 않으면 다행이다”는 답만 돌아왔다.

올해 초 홍익대 청소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 실태가 노동단체와 학생들을 통해 알려지면서 최근에는 이 대학을 포함해 연세대, 고려대 등 청소원들의 임금이 향상되는 성과가 있기는 했다. 연세대의 한 청소 노동자는 “해고가 비일비재하고 관리자가 월급을 횡령하며, 쓰레기 줍는 사람이라고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기도 했다”며 “이런 문제는 사라졌지만 과중한 업무와 열악한 근무환경에 시달리는 것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윤정아기자 jayo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