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18일 프랑스 루르드의 동굴에 세워진 성모상 앞에서 세계 각국 순례객들이 기도를 올리고 있다.

프랑스 남서부의 루르드(Lourdes)는 작은 시골 마을이지만 전 세계에서 연 600만명의 순례자가 찾는다. 1852년에 성모 마리아가 14세 소녀 마리아 베르나데트 수비루의 눈에 18차례에 걸쳐 발현(發顯)한 성소이기 때문이다. 베르나데트는 성모 발현을 경험한 후 그것을 의심하는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받았으나, 자신이 본 사실을 용기 있게 증언했고 교회의 엄밀한 조사에 품위 있게 응했다. 마침내 1862년 교황 비오 9세는 성모가 베르나데트에게 나타났음을 공식 인증했고, 이후 루르드는 가톨릭(천주교) 영성을 증거하는 중요한 순례지가 됐다.

“순례객들을 위한 자원봉사자들이 8000여명이나 됩니다. 세계 각국에서 자비를 들여 와서 묵묵히 봉사하는 이들을 보면 늘 감동을 받습니다.”

루르드에서 한국인 순례자들을 위해 성지 안내를 하는 예수성심시녀회의 이 마리스텔라(45) 수녀는 올해 3월 한국천주교 대구대교구에서 파견돼 왔다고 했다. 그는 “15년 전에 이문희 대주교(전 대구대교구장)께서 여기에 오셨다가 한국어 안내자가 없는 것을 보고 수녀들을 파견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 수녀는 “루르드에 와서 성모 발현을 체험한 베르나데트를 더욱 공경하게 됐다”며 “가난했던 베르나데트는 성모님을 이용해 돈을 벌려 한다는 의심을 받을 정도로 모욕을 당했으나 묵묵히 응대하고 수녀회에 입회한 후 35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늘 감사하며 살았다”고 말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이영식 팀장은 “가톨릭 역사에서 신앙을 잃은 시대에 성모께서 발현해 사람들에게 회개의 메시지를 줬다”며 “루르드 성모 발현도 종교를 중세의 유물로 치부하며 유물주의가 판을 치던 시기에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정부 신부는 “가톨릭의 성모 신앙이 마리아를 신격화한다는 오해가 있으나,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그리스도의 어머니로서 공경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순례단은 이 수녀의 안내로 베르나데트 박물관을 둘러본 후 동굴 샘물에 몸을 담그는 침수(浸水) 의식에 참여했다. 이 수녀는 “성모께서 베르나데트에게 ‘샘에 가서 그 물을 마시고 몸을 씻어라’하고 말한 이후로 샘물을 마시고 몸을 담그는 사람들에게 치유의 기적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며 “샘 앞에는 병자들이 놓고 간 목발이 있었으나 외적인 것보다 내면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제는 치워져 있다”고 말했다.

성모가 발현한 장소에 건립한 ‘동굴 성당’에 들어가 보니, 벽면에 성모가 한국의 수호자(주보성인)인 것에 대해 감사하는 표식이 붙어 있었다. 이 수녀는 “1830년대에 파리 외방 전교회가 조선에 선교사를 파견할 때 무사히 귀국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루르드 성모께 기원했고, 1840년에 교황청에서 성모를 조선의 수호자로 승인했다”며 “1876년 동굴 성당 축성식 때 그것을 기념하는 표식을 새겨서 봉헌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0년 한국 순례객 3만5000여명이 루르드를 다녀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수녀는 “이곳을 다녀간 순례객은 이웃을 더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며 “그것이 성모님 뜻에 진정으로 따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수녀의 당부는 프랑스 수도인 파리 중심가에 있는 파리 외방 전교회에서 만난 조르주 콜롱(58) 총장 신부의 말과 통한다. “나라와 종교, 종파를 떠나 사랑과 평화를 위해 연대감을 갖고 함께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파리 외방 전교회는 한국 천주교의 초석을 다진 선교회다. 로마 교황청의 아시아 선교 지침에 따라 설립된 파리 외방 전교회는 19세기에 조선 천주교인들의 선교사 파견 요청에 따라 170여명의 선교사를 한반도에 보냈고, 그 중 12명이 순교의 피를 뿌렸다.

콜롱 신부는 “한국 가톨릭 교회가 외형적으로는 크게 성장했지만 외형에만 신경 쓰다가는 자칫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며 “북한 선교 등 새로운 모델과 주제를 찾아 가톨릭의 가치를 확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루르드·파리 = 글·사진 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