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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양음악순례 / 서경식 지음, 한승동 옮김 / 창비

재일 조선인 2세인 저자가 30대 시절 유럽을 여행하며 체험한 서양미술에 대한 일본저서가 국내에 소개된 것은 1992년이었다. 도쿄게이자이대(東京經濟大) 현대법학부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가 서양미술 걸작을 주목한 그 책은 ‘나의 서양미술 순례’였다. 그로부터 20년 후 동일한 저자의 이름으로 ‘나의 서양음악순례’가 새로 나왔다. 2010년 4월부터 2011년 8월까지 33회에 걸쳐 문화웹진 ‘나비’에 연재한 글을 묶은 책이다.

전작이 미술비평이 아니라 미술을 통해 30대 무렵 저자의 삶과 사색을 담아낸 글이었듯, 신간에서도 육십을 바라보는 저자는 음악을 통해 ‘50대의 나’ ‘2000년대의 나’를 말한다. 미술책이 나홀로 감행한 여행기의 독백이라면, 음악순례기엔 젊은시절 클래식음악모임서 만난 성악가 아내 F와 동행하며 주고받았던 음악적 교감도 비중 있게 다뤄진다. 20여년의 세월과 더불어 미술에서 음악으로 대상을 달리하며, 자신의 일상과 시대적 사색을 반영한 음악, 음악가이야기를 흥미롭게 펼친다.

저자는 “음악이란 정말 무서운 것” “ 한없는 청순과 고귀함, 그리고 바닥 모를 질투와 욕망을 동시에 지닌 존재”로 지목하며 음악에 대한 다양한 일화와 체험을 공개한다. 빈소년합창단이 등장하는 오스트리아 영화 ‘들장미’를 비롯, 학창시절 악기를 연주하던 친구들에 대한 동경을 통해 새로운 음악 세계를 만났다. 연주 및 감상에서 사회 경제적 여유와 훈련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음악에 대해 지녔던 동경과 반발이라는 이율배반적 감정도 토로한다.두 형이 한국 유학 중 정치범으로 구속된 뒤 구원운동을 펼치던 젊은날, 음악은 그의 소소한 기쁨이고 위안처였다. 중학시절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여학생이 건네준 야사 하이페츠의 바이올린곡 SP, 숯불구이집서 아르바이트하던 대학 친구가 권한 포레의 ‘레퀴엠’, 아내 F가 부르던 슈베르트의 가곡 등 음악 편력과 더불어 저자는 친근한 일상의 동반자로서 클래식음악의 묘미를 일깨운다.

책의 중후반은 저자부부가 2000년부터 매년 여름 찾고 있는 잘츠부르크음악제를 비롯, ‘음악 도시’ 오스트리아 빈 등에서 경험한 오페라, 교향곡, 실내악, 독주회 이야기가 펼쳐진다. 2010년 잘츠부르크음악제의 경우 오페라 5곡, 교향곡 6곡, 리사이틀과 실내악 12곡 등 총 23곡에 대한 경험이 당시의 현장 분위기와 더불어 생생하게 전해진다.

특히 비중 있게 등장하는 음악가는 1981년 일본 교토(京都)서 처음 만났던 재독일 작곡가 윤이상, 19세기말 오스트리아 음악가 말러 그리고 요절한 슈베르트다. 또한 유대인 학살의 현장, 아우슈비츠에서 이송돼오는 유대인을 환영하고 교수형 집행장에서 경쾌한 행진곡을 연주했던 수인오케스트라를 통해 ‘음악이라는 폭력’을 주목한다. 책 말미의 ‘나와 F가 뽑은 베스트3’는 부부가 대화식으로 추천하는 음악 목록이다.

신세미기자 ssem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