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히로부미 풍자만화는 ‘호색한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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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 만화로 보는 근대 일본 / 시미즈 이사오 엮음, 장영순 옮김 / 소명출판

‘만화 천국’, ‘만화 왕국’으로 불리는 일본의 근대 만화 100편을 통해 근대 일본의 속살을 살폈다. 일본 만화가이자 풍자화 연구가가 엮은 이 책은 막부 말기부터 쇼와(昭和) 전후기(1945~1989)까지의 일본 근대사를 당시의 대표적인 풍자만화 100편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시대별 주요 사건을 테마로 하는 풍자만화를 통해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사람들이 각 시대의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역사에서 자세하게 다루지 않았던 일본인의 감성과 비판적인 시선을 들여다본다. 편저자는 특히 근대 일본 만화가들이 만화를 통해 표현한 반골·패러디 정신에 주목한다.

일본 막부 말기인 1834년, 목판화가인 가쓰시카 호쿠사이가 그린 베스트셀러 그림책 ‘호쿠사이 만화’ 12편에 수록된 그림 ‘뒷간’은 반골·패러디 정신을 잘 보여준다.

‘뒷간’을 보면 칼을 찬 무사가 한쪽이 시원하게 뚫린 화장실에서 쪼그려 앉아 볼 일을 보고 있다. 화장실 밖에는 하급 무사와 수행원 복장을 한 세 명이 얼굴을 찌푸리며 코를 틀어막고 앉아 기다리고 있다. 당시 집권적 지배체제인 막번(幕藩) 체제 최고 윗자리에 있는 상급 무사도 ‘용변을 본다’는 점에서 농민이나 상공민과 다를 바 없다는, 모두가 같은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무사계급을 풍자하고 있는 그림이다. 상급 무사를 희화화한 이 그림은 물가 상승과 기근, 농민 봉기로 막번 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한 시절이었기에 등장할 수 있었던 그림이었다.

1849년, 우타가와 요시토라가 그린 ‘익살꾼 무사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위한 떡’은 오다 노부나가가 쌀을 찧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빚은 반죽으로 만든 떡을 도쿠가와가 편하게 앉아서 먹고 있는 그림이다. 당시 떠돌던 “오다가 찧고 히데요시가 빚은 천하의 떡,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서 먹는 것은 도쿠가와”라는 강렬한 시를 비주얼화한 것으로, 고생은 선조들이 하고 도쿠가와가 그 득을 혼자서 독차지했다고 혹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그림으로 우타가와 요시토라는 발행소와 그림 원판을 모두 소각당하고 50일간 쇠고랑을 차는 처벌을 받았다.

또 자동차를 처음 본 일본인의 표정을 생생하게 기록한 그림도 있다. ‘도쿄에 처음 등장한 자동차’라는 제목의 이 그림은 1898년 프랑스인이 자동차를 팔기 위해 가두홍보한 모습을 스케치한 것으로, 군중과 경찰은 서양문명의 생생한 위력을 보고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1909년엔 ‘죽은 자를 채찍질하는 풍자화’가 등장한다. 그해 11월 오사카(大阪) 곳케이신문에 ‘여자를 좋아하는 자의 최후’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이 그림은 같은 해 10월26일 만주의 하얼빈(哈爾濱)역에서 안중근에 의해 사살된 이토 히로부미를 가리킨 것이다. 편저자는 “이토의 사생활의 배후에는 늘 여성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이 풍자화의 테마로 자주 다루어졌다. 그래도 죽은 자를 채찍질하는 듯한 이와 같은 풍자화가 그려진 것은 왜일까? 그것은 그가 한국인뿐만 아니라 일본인에게도 원망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고 해석한다.

김도연기자 kdychi@munhwa.com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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