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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 보는 남자, 로맨스 읽는 여자 / 오기 오가스·사이 가담 등 지음, 왕수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이 책을 번역한 왕수민씨가 책머리에 소개한 에피소드가 재미있으면서도 슬프다. 왕씨의 한 친구는 결혼한 지 1년 만에 남편에게 크게 실망을 했다는 이야기를 털어놨다. 남편이 포르노 마니아였던 것이다.

“역겨운 장면밖에 안 나오잖아. 그 사람도 내가 죽을 만치 싫어한다는 다 알아. 그래도 못 끊겠대. 나와의 관계가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그런 걸 꼭 봐야 한다는 게 정말 이해가 안 돼. 힘들고 배신감마저 느껴.”

왜 아니겠는가. 건전한 가장으로서 의젓한 품격을 지녀야 할 남자가 천박하기 그지없는 여자들이 벗고 설치는 포르노에 목을 매는 꼴이라니. 이 부부처럼 심각한 갈등을 빚지는 않더라도 포르노를 둘러싼 남녀 간의 갈등이 꽤 많다는 것을 주변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그것이 남녀 간의 성적 신호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저자들은 전 세계 50만명의 남녀가 검색한 10억 건의 웹 검색 내용, 수십만 권의 에로소설, 500만 건의 성인용 구인 광고, 수천 편의 디지털 로맨스 소설, 4만 개 이상의 성인 웹사이트를 과학적, 통계적으로 분석해 남녀의 상반된 욕망을 드러냈다. 성심리에 관한 연구서적은 많지만, 이처럼 온라인 포르노 세계를 파헤친 책은 없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포르노의 바다를 파헤치다”= 1990년대 인터넷의 등장은 일반인의 성적 행동에 가히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기껏해야 성인 비디오와 잡지 정도를 숨겨 놓고 보던 이들에게 인터넷은 성적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는 신세계와 같았다. 포르노 혹은 에로물 사이트가 인터넷을 통해 국경을 넘어 범람해 온 지 오래다. 하지만 성 연구의 주제로서는 방치돼 왔다.

미국 보스턴대에서 인지신경체계학 박사학위를 받은 두 저자는 전공으로만 보면 포르노 사이트와 무관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컴퓨터신경학을 공부한 덕분에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갖게 됐다. “성적 욕망이나 성적 흥분을 일으키는 두뇌 소프트웨어는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이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남자와 여자의 두뇌는 각기 원하는 성적 자극의 방식이 다르다. 남자들은 ‘보는 것’(시각적 신호)을 좋아하는 반면 여자들은 ‘읽는 것’과 ‘이야기하는 것’(심리적 신호)을 선호한다. 일반인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성인 웹사이트 순위 목록을 보면, 남자의 경우 1위부터 5위까지 포르노 동영상 사이트가 차지한 반면, 여자는 팬 픽션(fan-fiction·인기 있는 대중문화 작품을 팬들이 자신의 뜻대로 재창작한 것)과 로맨스 소설 관련 사이트가 많았다.

남성이 시각적 자극에 약하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이야기는 아닌데, 이 책에서 소개한 내용, 즉 수컷 원숭이도 인간과 같은 반응을 한다는 것은 민망한 웃음을 머금게 한다. 미국 듀크대 메디컬센터에서 기르는 붉은털원숭이들은 자신이 마실 과일 주스를 내놓으면 암컷의 회음부를 볼 수가 있다. 수컷 원숭이들은 예외 없이 주스를 내놨다.

두 저자는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남자들이 마른 몸매보다 통통한 몸매의 여자들을 의외로 선호한다는 점이 드러난다”고 밝혔다. 웹 검색 순위를 보면 ‘BBW(Big, Beautiful Woman·크고 아름다운 여성)’라 하여 풍만한 거구의 여인들에 대한 높은 선호를 보이고 있다. 저자들은 “남성들에게 여성의 가슴과 엉덩이만큼 자극적인 시각 신호는 없는 셈”이라고 말한다.

▲로맨스 소설은 여성의 포르노?= 여성도 시각 신호에 성적으로 예민하게 반응하는데, 남성 지배의 문명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숨길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이 있다. 요즘 한국 드라마에서 젊은 남자배우들이 미끈한 몸을 경쟁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여성이 시각 신호에 예민하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한 유행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 담긴 연구 결과는, 남성을 발가벗기는 그러한 시도가 크게 효과적이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여성들은 매끈한 몸 자체보다는 그러한 몸을 지닌 남자가 돈과 권력을 함께 갖고 자신을 사랑해주는 데서 성적 흥분을 느낀다. 남자보다 확실히 복잡한 성심리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성적인 흥분을 주는 남자를 현실에서 만나기 어려우니 멋진 알파남이 등장하는 ‘로맨스 소설’에 열광한다.

다소 과장되게 표현하면 로맨스 소설은 여자들을 위한 포르노다. 여기서는 여주인공이 온갖 장애물을 뛰어넘어 영웅을 찾아내 그의 마음을 얻고 결혼에 성공한다. 인간이 진화의 역사를 거치는 동안 뛰어난 배우자의 특질이라 평가받는 것을 남자 주인공은 신체적·심리적·사회적 면면에 모두 담고 있다.

로맨스 소설의 남자 주인공은 도도하고 잘난 체하지만, 여성 주인공 앞에서는 결국 부드러운 내면을 드러낸다. 대한민국 여성들에게 ‘현빈 앓이’를 퍼트렸던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주인공 김주원을 떠올리면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들은 그런 알파남이 자신을 사랑해주는 데서 ‘성적 신호’가 깜박인다. 로맨스 소설이나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통해 대리만족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남성들은 자신의 아내나 연인이 ‘현빈 앓이’를 한다고 해서 섭섭해할 일이 아니다. 여성의 유전자에 깃든 성적 신호를 대중문화를 통해 건전하게 즐기며 삶의 활력소로 삼는 것이니.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포르노라는 하위의 문화를 다룬 이 책을 고급스럽게, 제대로 읽은 것이다.

▲“차이를 이해하고 감싸 안아야”= 번역자 왕수민씨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고 했다. “남성의 시각적 욕구와 자신이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별개라고 해. 그러니 남편이 포르노를 본다고 해서 배신감까지 느낄 필요는 없을 것 같아.”

하지만 막상 자신의 남자가 포르노광이라면 참기 힘들 것 같다고 했다. 그런 까닭에 친구 남편에게 이 책을 주고 싶다고 했다. 그 속에 다음과 같은 말을 담아서. “여자 두뇌는 남자와 달라 포르노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보는 남자에게 배신감을 느끼기 쉬우니 대놓고 포르노를 시청해서 아내 맘 상하게 하는 일을 하지 마세요.”

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