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방랑 / 폴 서루 지음, 강주헌 옮김 / 작가정신

“나는 잘못 알고 있었다. 학살이나 지진은 없었다. 지독한 열기와 끔찍한 길은 있었다. 버려진 기차도 눈에 띄었고 전화는 잊고 지내야 했다.(중략) 아프리카 사람들은 정부의 속임수에 농락당하고, 외국 전문가들에게 사취당하며, 자선단체들에게 우롱당한다. 사방팔방에서 속임수가 판쳤다.(중략)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은 아프리카 사람들의 순진함을 훔쳤고, 자기 이익부터 챙기는 원조기관들은 그들에게 헛된 희망을 주었다. 그 여파로 아프리카 사람들은 자기 땅에서 발을 질질 끌며 힘겹게 살거나, 다른 나라로 떠나려고 애썼다. 그들은 구걸하고 애원했으며, 막돼먹은 사람처럼 당연한 권리인 양 뻔뻔하게 돈과 식량을 요구했다.”

어떤가. 여타 아프리카 기행문과는 사뭇 다르지 않은가. 이 책은, 세계적인 여행작가인 저자가 2000년대 초반 아프리카의 북쪽 끝 카이로에서 남쪽 끝 케이프타운까지 아프리카를 관통하며 발로 쓴 여행기다.

저자는 고물 기차와 닭장 버스를 타고, 사막에서 야영하고, 무장 강도들의 총격을 피하고, 통나무배를 노 저으며 이집트에서 수단, 에티오피아, 케냐, 우간다, 탄자니아, 말라위, 모잠비크, 짐바브웨 그리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국경을 넘는다.

느리고 위험하고 불편한 육로 여행에서 저자는 아프리카의 본질을 꿰뚫는다. 그 통찰은 앞서 인용한 문장이다.

1960년대 초반에 평화봉사단원으로 아프리카에 머물렀던 저자는 당시와 비교, “아프리카는 내가 이곳에 살던 30여 년 전보다 물질적으로 피폐하다”면서 “더 굶주리고 더 가난하며 교육의 혜택마저 누리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한마디로 아프리카는 과거에 비해 “더 비관적이고 더 부패해진” 것이다. 저자는 아프리카에 대해서나 자신이 속한 서구 세계에 대해서나 엄밀하게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한다.

예를 들어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대해 저자는 “누더기를 걸친 잘생긴 사람들, 오만과 궁핍이 뒤섞인 사람들, 비유하자면 가보인 은그릇까지 저당 잡힌 귀족들의 도시”라며 “유럽인의 야만인 조상들이 짙푸른 염료로 배에 색칠하고 엉덩이를 훤히 드러낸 채 유럽을 헤매고 다닐 때, 에티오피아인들은 곱게 옷을 차려입고 가축을 기르고 수레를 사용하며 십계명을 충실히 따르고 이슬람의 맹공으로부터 문명을 지켜내고 있었다”고 말한다.

범죄의 온상인 케냐의 나이로비에서는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의 지갑과 권총까지 훔쳐내는 대범한 좀도둑들과 어수룩해 보이는 피해자들을 대비시키고, 관을 만드는 목공소가 줄지어 있는 것을 보고는 “내가 케냐에서 본 가장 분주하고 활기찬 산업이었다. 관을 만드는 목공들과 그들의 애처로운 생산품은 불치병에 걸린 듯한 나라의 완벽한 자화상”이었다고 냉소한다. 이처럼 저자는 아프리카의 현실에 대해 안타까워하면서도 관찰자로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여행지에 대한 낭만과 환상에 함몰된 여타의 여행서와 차별화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책에는 한국 외교관의 낯뜨거운 행각도 들어 있다. 상아를 보다 싼 값에 구입, 검색을 받지 않는 외교행낭에 실어 보내려는 주에티오피아 한국 대사관 삼등서기관의 꼴사나운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책에서 직접 확인해 보시길.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