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 알랭 드 보통 지음, 박중서 옮김 / 청미래

알랭 드 보통. 저자의 이름만으로도 관심을 끄는 책이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여행의 기술’ 등의 흥미로운 저작으로 국내에서만 100만부 이상의 책을 판매한 베스트셀러 작가의 따끈따끈한 신작이니 왜 안 그렇겠는가. 게다가 저자는 지금 이 책을 이탈리아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에서 발간하면서 때맞춰 내한해 사인회 등에 참가하며 국내 독자들과 만나는 중이다.

알랭 드 보통은 그동안의 저작을 통해 사랑, 여행, 행복, 불안 등 현대인들의 관심사를 주제로 철학적인 사유가 담긴 글을 써왔다. 그가 ‘일상의 철학자’로 불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평범한 일상을 잘게 쪼개서 해석해내는 그의 글은 국내 독자들을 매료시켰다. 그런 그가 이번 책을 통해 꺼내 보이는 주제는 ‘종교’다.

왜 하필 종교일까. 그건 아마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테러와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을 ‘종교적 갈등’에서 찾으면서 종교의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서구의 상황 때문이리라. 저자도 방한 기자회견에서 “지금 서구 사회에서 ‘종교란 사악하면서 타락한 존재’라는 식의 ‘공격적인 무신론’이 대두되고 있다”고 했다. 저자는 이런 무신론자들의 무차별 공격에 대해 ‘무신론자들이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다면, 그다음은 논의를 어디로 끌고 가야 하는가’를 묻는다.

스스로도 무신론자인 저자는 종교를 ‘매우 쓸모있는 발명품’이라고 표현한다. 그가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발명품의 ‘쓸모’에 대해서다. 다시 말해 종교를 무신론자의 입장에서 극히 세속적인 영역으로 데려오는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논리를 통해 저자는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여러 개의 신앙에서 이러저러한 긍정적인 요소를 차용하는 것이, 문학애호가가 수많은 고전들 중에서 좋아하는 작가 몇 명을 골라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종교에 대해 말하면서도 무신론자와 종교인 사이에서 단골로 시빗거리가 되는 초자연적인 기적이나 신화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가릴 생각도 아예 없다. 대신 그는 현대 사회에서 종교를 믿는 방식이나 종교가 요구하는 삶의 가치 등에 대해 주목한다.

예컨대 가톨릭의 미사에서 종교적 의미보다는 ‘장소를 이용해서 공동체정신을 만드는 방식’을 들여다본다. 무작위로 추출된 집단이라 할 수 있는 신도들이 성당에 모이는 행위를 보며 경제력과 지위에 근거한 집단의 구분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데 더 주목하는 것이다.

저자는 또 사랑과 자비의 가치만으로 강압 없이 군주와 거물들을 설복시켜 한 목수의 조각상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들거나 농부와 마부의 말을 씻겨 주도록 만들었다는 데 종교의 성취의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우리들은 ‘세속적 성공 없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저자는 종교가 가진 공동체, 친절, 교육, 자애, 관점 등의 관점을 짚어 보고 미술과 건축, 그리고 제도의 측면에서 종교의 기여와 다양한 쓸모를 살핀다. 주제마다 논리는 정교하고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이런 것들이 바로 알랭 드 보통이 내놓는 저작의 매력이다.

경쾌한 느낌의 전작에 비해서는 다소 무겁긴 하지만 평소 종교에 관심이 있었던 독자라면 문장 곳곳에 수없이 밑줄을 치게 될 게 틀림없다.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