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문화를 말하다 / 이재정·박신미 지음 / 예경

풍요의 시대였던 1900년대, 사회 전반에서 과시적으로 화려한 기류가 팽배했다. 여성패션은 프랑스가, 남성패션은 영국이 주도하며 당대의 일상과 문화를 반영하는 패션을 이끌었다.

르네상스시대 이후 줄곧 서구의 여성패션은 가슴과 엉덩이를 강조하며 위로 추켜올린 듯한 S실루엣이었다. 시폰과 레이스 소재로 부드러움을 강조하던 여성패션에 일대 변화가 일게 된 것은 1910년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였다. 여성 취업이 본격화하고 직장 여성용으로 기능적이고 단순화한 유니폼스타일이 보편화하면서, ‘단순성’이 새로운 패션용어로 부각됐다.

1920년대 들어 왕족, 귀족 대신 영화배우, 부유층의 아내나 상속녀들이 새로운 패션리더로 등장했다. 이때부터 여성들은 코르셋을 벗어던졌고, 남성복 스타일의 여성복이 유행했다.

샤넬은 실험적인 디자이너이자 1920년대 패션스타였다. 남성속옷 소재였던 신축성 있는 저지와 부드러운 니트를 활용한 기능적인 여성복을 선보였고, 1921년 향수 ‘샤넬 넘버5’로 전설이 됐다.

경제공황과 그 이후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발달로 1930년대엔 실용성을 중시하던 미국 패션이 발전했다. 장식적이고 화려한 맞춤복 중심의 파리 의상과 달리 기성복 중심의 미국 의상은 심플함이 돋보였다.

국내 의상디자인 전공자 2명이 공동 집필한 이 책은 20세기 패션사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스타 디자이너와 작품들이 당대 사회 분위기와 주요 사건의 흐름 속에 재조명되고 심층 분석된다. 샤넬, 이브 생 로랑, 조르조 아르마니, 구찌, 칼 라저펠트 등 디자이너들이 디자인 미술 음악 등 다른 장르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온 패션 변천사가 펼쳐진다.

1940년대 제2차 세계대전 후 복고적 여성성을 되살려낸 크리스챤 디올의 ‘뉴룩’, 소비주의 시대인 1950년대 화사한 파리 오트 쿠튀르, 그리고 젊은이가 문화의 주역이었던 1960년대 팝아트 같은 원색조의 스트리트 패션 등이 재조명된다. 1970년대 보헤미안적 자연주의와 펑크 감각이 두드러졌다면, 여성의 사회 진출이 급증했던 1980년대엔 어깨를 강조한 정장 등 강한 이미지의 여성복이 호평을 얻었다. 21세기를 앞둔 1990년대 미래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을 반영하듯 복고풍이 되살아났다.

20세기 패션은 파리, 런던, 뉴욕을 중심으로 변화를 거듭하면서 문화산업의 중심에서 대중의 기호를 반영하고 또 변모시켰다. 코르셋 대신 바지정장, 속옷 같은 겉옷이 등장했고, 조깅복이 파티복으로 변신했다. 보다 환경친화적 소재가 등장하고, 젊은층의 실험적인 거리패션이 가세하면서 패션의 다양성이 이뤄졌다.

패션의 관점에서 20세기를 주목한 이 책은 사회문화사의 기록으로서, 패션 전공자가 아니라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신세미기자 ssem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