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부자들 / 짐 테일러, 더그 해리슨, 스티븐 크라우스 지음, 이진원 옮김 / 마젤란

지난 2003년에 ‘한국의 부자들’이라는 책이 나온 적이 있다. 100여명의 부자를 인터뷰해서 그들의 공통점을 정리한 것이다. 이 책은 부자들의 해부서라는 평을 들으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사람들이 부자가 되기를 얼마나 열망하는지를 출판분야에서 드러낸 경우라고 할 것이다.

우리나라 드라마가 상류층 부자의 생활을 즐겨 다루는 것은 대중의 환상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드라마에 나타나는 부자들의 행태는 도덕·윤리적인 측면에서 부정적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드라마를 보는 대중이 부자의 화려한 모습을 동경하면서도 그들에게도 뭔가 문제가 있기를 바라는 심리를 지녔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국 부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도 미국인의 부자에 대한 시각이 한국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미국에서 부자들은 항상 존경과 분노의 대상이었다. 미국인들은 부자들이 이뤄낸 성공을 칭찬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들의 몰락과 곤경을 반긴다.’

과연 부자란 어떤 사람들일까. 그들은 어떻게 부를 쌓았고 어떻게 누리고 있으며, 어떤 생각을 하고 살까. 시장조사 컨설팅 회사인 해리슨 그룹을 이끌고 있는 세 저자는 미국 내 부자 6000여명을 인터뷰한 결과를 이 책에 담았다.

책에 따르면 1983년부터 2004년까지 미국 인구는 33% 늘어났는데 순자산이 500만달러 이상 되는 사람은 353%나 증가했다. 부의 편중 현상은 날로 심화해 500만달러 이상을 가진 상위 1%의 100만가구가 미국 전체 자산의 3분의 1을 소유하고 있다.

저자들은 500만달러의 유동자산을 갖고 있거나 적어도 연간 소득이 12만5000달러 이상 되는 사람을 ‘새로운 부자’로 정의하고, 이들을 심층 인터뷰하고 연구 분석했다.

이 책은 새로운 부자들의 핵심적인 특징이 ‘은밀한 부(stealth wealth)’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부자들 중에 89%는 “나는 돈을 드러내지 않고 갖는 은밀한 부의 중요성을 믿는다”고 말했다. 돈 있는 것을 과시하며 ‘떵떵거리며’ 사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조사를 해 보니,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숨은 부자들이 많았다. 또한 그들은 일류 소매 매장뿐만 아니라 할인 매장과 인터넷을 자주 이용했다.

그런데 왜 부자들은 과시적 소비를 하는 이미지를 갖게 됐을까. 왜 마케터들은 부자들이 명품만 산다고 생각할까.

그것은 언론이 부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할 때 패리스 힐턴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아주 특별한 사례만을 전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개를 물어야’ 기사가 되는 탓에 언론은 일부 부자들의 비상식적 사치 행태를 자극적으로 전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부자 중에는 중산층에서 평범하게 자라 순전히 본인의 통찰력과 노력으로 부자가 된 사람이 많다. 이들은 부자가 된 후에도 마음 속으로 여전히 중산층 의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상류층 부자라는 의식을 더 많이 갖게 된다는 것을 이 책의 설문 조사 결과는 보여준다. 마케터와 서비스업종에 종사하는 이들은 ‘초보 부자’들이 예술품, 골동품, 보석 구매 등을 통해 세련된 외양을 갖춰 기존 부자들과 어깨를 나란히할 수 있도록 공략한다.

이 책은 돈에 대한 가치와 목적에 대한 반응을 기준으로 부자들을 다섯가지 그룹으로 나누었다. 돈이 자신의 삶을 바꾸지 못하게 노력하는‘이웃(neighbor)’이 18%선이다. 이들은 돈을 쓰고 과시하는 데 보수적이며 주변 사람들과 편하게 잘 어울린다.

돈에 대한 책임감, 영향력 때문에 고민하는 ‘레슬러(wrestler)’는 24%를 차지한다. 이들은 가족에게 비싼 선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하면서도 혹시 과소비에 물든 것은 아닌지 고민하고 다른 사람들의 공격 대상이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13%의 ‘매버릭(maverick)’은 많은 부를 가졌음에도 그것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열정에 따라 또 다른 도전의 길을 간다. 5개 그룹 중 가장 낮은 비율인 이들은 자신에 대한 남의 시선을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

행복해지는 요소 중 돈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부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디렉터(director)’는 30%, 마음 편하게 소비하면서도 자선활동에도 열심인 ‘패트론(patron)’은 15%선이다.

이 책은 ‘일련의 선진적인 통계 기술’을 활용했다는 저자들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부자들의 인터뷰에 지나치게 의존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숨은 부자’가 많은 것처럼 부자들이 속내를 숨길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부자들의 공통적 특성을 잡아내고, 또 그들의 가치관과 행태에 따라 5개 그룹으로 나눈 것은 큰 성과라고 할 수 있겠다. 부자들의 다원적 사고는, 오늘날 미국 사회가 다방면에서 위기를 겪으면서도 공동체 자체가 붕괴되지는 않으리라는 믿음을 갖게 하는 힘 중의 하나일 것이다. 한국에서 부자들에 대해 이런 분석을 한다면 ‘레슬러’는 얼마나 될까. 또 ‘매버릭’은….

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