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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선/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교수·농업경제학

개정 농협법에 의해 농협중앙회는 내년 3월2일자로 경제지주회사와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해 사업부문별로 분리된다. 정부는 여기에 필요한 자본금 지원 계획을 세워 정부 예산안 제출일인 10월2일 이전에 농림수산식품위원회의 심의를 받도록 돼 있다. 그런데 농협중앙회가 정부 지원 요청서를 제출하고 한 달 이상 지났는데도 정부는 아직 자본지원계획서를 국회에 제출하지 않고 있다. 자본금 지원은 농협 개혁의 성패를 좌우할 매우 중요한 문제이므로 정부 지원계획 수립이 지연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농협중앙회가 한 조직 안에서 경제사업·신용사업·농업인 지원사업 등 여러 사업을 수행하다 보니 부문별 전문성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었고, 농산물 시장 개방, 비효율적 농산물 유통구조 등으로 어려워지는 농촌의 여건을 극복하는 데 경제사업의 역량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이에 따라 경제사업을 전문화하고 활성화하기 위해 사업구조 개편이 추진됐다.

사업구조 개편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자본금의 조달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난 정부에서 수립된 농협 신·경 분리 방안에서는, 농협이 필요 자본금을 자체 조달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고려해 2017년 이후 분리하기로 했었다. 분리 시기를 5년 이상 앞당긴 것은 정부는 물론 국회, 농민단체, 개혁 당사자인 농협까지도 개혁의 시급성에 대해 공감했기 때문이다. 자본 조달은 협동조합이 자체적으로 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는 것보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농업 여건의 극복을 위해 농협 개혁을 서두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모두가 공유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부족 자본금을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데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정부도 농협 사업구조 개편에 따른 자본 지원의 필요성을 스스로 인정했으며, 법 개정 취지에 맞도록 필요한 지원을 하겠다는 약속을 수차례 했다. 국회도 정부 지원계획을 농식품위에서 심의하는 절차를 법에 명시했다.

그런데 정부의 자본지원계획 수립이 지연되면서 정부 예산안 제출일인 10월2일까지 농식품위가 정부 지원계획을 깊이있게 논의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시된다. 자본지원계획서 제출이 늦어질수록 농식품위의 심의는 형식적인 선에서 그칠 가능성이 커지고, 이에 따라 법 개정 취지를 살리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예산 사정 등을 이유로 정부의 자본금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게 될 경우 농협 개혁의 목적 달성이 어려워지게 된다. 농협 개혁의 핵심은 농협이 농업인이 생산한 농산물을 제 값에 안정적으로 팔아주는 일이다. 사업구조 개편이 성공적으로 이뤄져 농업인들이 판로에 대한 걱정 없이 농산물 생산에 전념하면서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기를 기대해 왔다. 이명박 대통령도 농협 창립 5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자리에서 사업구조 개편에 대한 기대와 함께 농협의 개혁 노력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부가 농업과 농업인을 위해 농협 개혁에 진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농협법 개정을 서둘렀던 것만큼 자본지원계획서 제출도 서둘러야 한다. 그래야만 국회에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적정한 자본금 지원 규모와 방식에 대해 깊이있는 논의를 통해 최적의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 정부 지원금도 언젠가는 농협이 상환해야 할 자금이다. 농협 또한 필요한 자본 조달을 위한 자구 노력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사업구조 개편은 침체에 빠진 농업을 살릴 수 있는 중대한 기회다. 농협 개혁에 거는 농업계의 기대가 좌절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