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본심 / 클리포드 나스·코리나 옌 지음, 방영호 옮김 / 푸른숲

“인간들이 싫어서 시골에 내려가거나 산사로 들어가야 하겠다.”

인간 관계에 지친 사람들이 흔히 내뱉는 말이다. 그런데 시골이나 산사에서는 사람과 관계를 맺지 않고 독야청청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책은 인간 관계의 복잡한 딜레마를 컴퓨터를 통한 과학적 실험으로 검증하고, 그에 따른 행동 지침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저자 클리포드 나스는 스탠퍼드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코리나 옌은 스탠퍼드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한 후 디자인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두 저자는 27가지 실험을 통해 인간 관계의 문제들을 파헤쳤는데, 한국계인 문영미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가 다수의 실험에 동참한 것이 눈길을 끈다. 이은주(언론정보학) 서울대 교수와 이관민(인터렉션사이언스학) 성균관대 교수도 미국 유학 당시에 참여했다.

◆ 칭찬한 뒤의 비판은 “아니올시다” = 저자들은 인간 관계를 ‘칭찬과 비판’‘성격’ ‘팀 워크’‘공감’‘설득력’ 등 다섯 개의 범주로 나누고, 사람들이 흔히 궁금해하는 것들을 알아본다. 예컨대, 사람들이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 먼저 칭찬을 곁들인 다음에 본론을 꺼내놓는 화법을 쓰는데, 과연 유효할까. 실험의 결론은 ‘아니올시다’로 요약된다.

인간의 뇌는 부정적인 의견을 듣는 데 많은 인지 능력을 소모하느라 비판 이전에 들었던 칭찬의 내용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먼저 들었던 이야기는 잊어버리고 비판을 받고 난 후 불쾌함만 곱씹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긍정적 의견과 부정적 견해를 함께 제시할 때는, 먼저 부정적 의견을 말하고 나서 긍정적 부분을 전달하는 것이 좋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인간의 뇌와 신체는 칭찬보다 비판에 훨씬 큰 반응을 보인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만, 비판을 받는 것보다 행동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는 것이 실험의 결과다.

그 때문에 상사가 부하 직원을 다그치기만 하면 아랫사람은 자신의 속이 상한 감정에 사로잡힌 나머지 일처리를 더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다. 잘못을 지적하고 싶다면,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을 미리 알아놓고 그것을 제시하며 야단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부분의 사람은 겸손하게 보이고 싶은 마음과 유능해 보이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갈등한다. 실험을 통해 보니, 겸손한 태도는 분명 호감을 주지만 능력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 밝혀졌다. 직장 내에서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선 동료들 간에 서로 칭찬하는 분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 제 3자 앞에서 내가 동료를 존중하고, 그 동료가 나를 인정하는 발언을 하면, 제 3자는 나와 동료 모두에게 호감과 신뢰를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 닮으려고 애쓰는 것이 ‘최선의 아부’ = 두 저자는 인간의 성격을 네 가지 유형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고 본다. 사람들과 활발하게 소통하기 좋아하는 외향형, 독서나 사색을 하며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내향형, 타인과 만나면 바로 부정적 평가를 내리고 남의 말을 듣기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집착하는 비판형, 다른 사람들의 장점을 먼저 보고 양방향 소통을 지향하지만 인간 관계에서 압박을 느끼기도 하는 수용형 등이다.

사람은 흔히 비슷한 유형의 사람과 함께 있기를 좋아한다. 더 좋아하는 것은, 나와 다른 유형의 사람이 나에게 맞추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당신이 옳고 내가 틀렸기 때문에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이런 뜻을 담은 무언의 칭찬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성격이 비슷한 사람과 만날 때는 자신의 본 모습에 충실하고, 성격이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는 그 사람의 성격에 맞춰 말하고 행동하는 것. 이는 인간 관계의 과학적 측면에서 볼 때, ‘가장 강력한 아부’라는 것이 저자들의 생각이다.

조직에서 팀을 이뤄 활동할 때, 결속력을 강화하기 위해 팀 워크 훈련을 하지만 왜 큰 효과를 얻지 못하는 것일까. 훈련 중에 동료들과 함께 하며 과업 완수에 실패했던 경험을 자꾸 되뇌게 되는 탓이다. 사람의 뇌는 성공보다는 실패를 더 잘 인식한다는 것이 실험의 결과다.

팀원의 유대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팀 워크 훈련보다 같은 색깔의 손목밴드를 차게 하거나 작은 배지를 함께 달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팀 이름도 ‘해외 영업 1팀’처럼 역할과 관련된 이름보다는 팀원이 좋아하는 영화 제목 같은 것으로 삼으면 좋다.

◆ 우울한 사람에게 ‘힘내!’라는 위로는 헛짓 = 실험 결과에 따르면, 우울한 사람 곁에는 우울한 사람이 있어주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 우울해하는 사람에게 유쾌한 목소리로 “힘내!”라고 말하는 것은 별 도움이 안 된다. 자신의 감정과 다른 감정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지적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탓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신과 비슷한 감정 상태의 사람을 선호한다.

관리자가 부하 직원에게 지적을 할 때 나쁜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웃음을 짓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하면 비판의 충격이 완화되기보다 지적 받는 부하 직원은 꺼림칙한 기분을 느끼고 관리자가 무엇을 지적하는지 혼란스러워한다. 승진 등의 기쁜 소식도 슬픈 목소리로 들으면 불쾌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사람은 서로 상반된 정서적 신호를 감지할 때 그 모든 감정들을 한꺼번에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