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이재갑 글·사진/살림

“6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의 너울에서 거의 잊히다시피 한 조선인 강제 징용 노동자들의 삶은 단숨에 내 영혼을 사로잡았다. 나는 그들이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을 내 카메라에 담고 싶었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 되었다.”

다큐멘터리 사진가인 저자가 일제강점기 강제 징집됐던 조선인들의 생생한 흔적을, 당시의 기억을 지닌 여러 사람들의 증언과 사진으로 담았다. 저자는 이를 위해 지난 1996년부터 15년 동안 후쿠오카(福岡), 나가사키(長崎), 히로시마(廣島), 오사카(大阪), 오키나와(沖繩) 등 일본 곳곳을 답사하며 조선인 강제 징용 노동자들의 한 서린 역사를 되짚었다.

책에 따르면 일본은 1939년부터 1945년까지 100만 명이 넘는 우리 동포를 강제 연행했고, 군속으로 37만 명을 전선에 동원했다. 조선 국내에서 동원한 485만 명과 합하면 실제 6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연행된 셈이다.

이들은 후쿠오카현의 아소 탄광, 미쓰비시 나가사키 조선소, 사가(佐賀)현의 이마리 가와나미 조선소, 오사카의 우토로 마을, 히로시마의 야스노 발전소, 오키나와의 도카시키(渡嘉敷)섬 등에 끌려가 강제 노역에 시달렸다.

아소 탄광은 후쿠오카 지역 41개 광업소 가운데 조선인 징용자에 대한 노동 착취가 가장 심했던 곳이다. 아소 탄광으로 강제 징용된 조선인 1만 명 중 절반은 굶주림과 중노동을 이기지 못해 숨지거나 탈출을 감행했다.

야마구치(山口)현 우베(宇部)시 도코나미 마을 앞바다에 아직도 흉물스럽게 서 있는 굴뚝형 탄광 구조물은 1942년 2월 해저 탄광 침수사고로 목숨을 잃은 134명 조선인의 혼을 고스란히 안은 상징물이다. 일본은 현재까지 아무런 배상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안전상의 이유로 유해 발굴조차 허락하지 않고 있어 아직도 이들의 유해는 차가운 바닷물에 수장된 채 방치돼 있다.

히로시마의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는 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 징용으로 끌려 갔던 한국인들 가운데 원폭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건립됐다. 저자는 “원폭에 의한 실질적 피해는 일본인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며 “자국의 전쟁 물자 생산을 위해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의 삶 또한 가볍게 생각할 수 없고, 이 과정에서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영혼도 함께 거둬들여 모셔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궁극적으로 이 작업들은 결코 한·일 간에 남아 있는 갈등과 대립의 관계를 야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며, 철저히 앞만 보고 시작한 일”이라며 “미래 지향적인 관계로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과거 청산이 올바르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도연기자 kdy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