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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동형 기자들 / 김지영 지음 / 효형출판

‘객관 보도의 적, 피동형과 익명 표현을 고발한다’는 부제가 붙은 책은 ‘5공의 유령’이 여전히 한국 언론계를 배회하고 있음을 적시한다.

경향신문 편집국장·편집인을 역임하며 30여년간 언론계에 몸담은 저자는 피동형 표현은 80년대 초 군부독재 시절 기자들이 정치권력을 미화할 때 자주 사용하던 표현이며, 익명 표현 역시 객관보도 표현의 치명적 적이라고 꼬집는다. 책은 공고한 ‘피동형과 익명의 사슬’을 끊어내기 위해 피동형과 익명이 암약하는 신문·방송 기사의 오염 실태를 고발한다.

저자는 “피동형과 익명 표현이 독재권력을 미화할 일이 없어진 오늘날에도 하나의 ‘스타일’로 자리 잡아 엄연한 ‘문체’가 됐다”며 언론의 고질병과 치부를 통렬히 비판한다. 군사정권의 협박과 회유로 급격히 생계형·굴종형, 심지어 권력추구형으로 변하면서 기자들의 기사 문장 스타일에도 변화가 온다. 의견기사임에도 우리말 어법에 전혀 맞지 않은 피동형 표현을 문장 끝마다 써서, 글 쓴 행동 주체인 기자 자신은 문장 뒤에 슬쩍 숨는다. 불요불급한 경우에도 취재원을 익명 처리해 특정 의견을 다수의견인 듯 포장하고, 취재하지도 않은 내용을 ‘전문가’의 이름을 빌린 익명을 동원해 지어내는 악습이 되풀이되고 있다. ‘피동형 기자들’이란 용어는, 5공 언론통폐합에 의한 탄압·피동의 시대가 가고 민주화시대가 왔는데도 군정시대에 잘못 든 표현습관은 사라지지 않고 떳떳한 유산처럼, 관행으로 더욱 위세를 떨치고 있는 현실을 빗댄 말. 해설·사설과 같은 의견기사는 물론, 사실을 위주로 작성해야 하는 스트레이트 기사에서도 ‘∼인 것으로 판단된다’, ‘∼로 이해된다’ 따위의 무주체 피동형 표현이 넘친다.

저자는 “기자들이 권력을 미화하면서 피동형 뒤로 숨었던 것은 차마 버리지 못한 기자의 양심에서 나온 행동”이라며 “하지만 한국 언론은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지 못한 채 그 음험한 ‘문체의 유산’을 남겼고, 이는 객관보도의 회복으로 나아가야 할 우리 저널리즘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고 장탄식한다. 오랫동안 문장 훈련을 한 우리 사회 대표적 소설가 등 문장가나 연륜 많은 필진의 글에는 피동형 표현을 찾기 힘들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저자는 “신문과 방송의 보도 문장은 국민에게는 매일의 국어교과서나 마찬가지”라며 “우리 언론은 수십년간 매일같이 피동형 문장으로 도배된 말글을 가르쳐 능동형 중심의 우리말을 왜곡해오고 있다”고 질타한다. 저자는 “능동형 표현은 우리 말글 체계의 훼손을 막는 일일 뿐 아니라 비객관보도로 인한 저널리즘 토양의 훼손을 막는 일이므로 미디어격변기에 언론매체와 정부·의회가 진지하게 고민할 때”라며 ‘문체 회복’을 요청한다.

정충신기자 csju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