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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다윈 서간집:기원, 진화 찰스 다윈 지음, 김학영 옮김 / 살림

“모든 생명체가 하나의 원시적인 형태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에 관한 내 신념은 분명 성급한 결론이네. 하지만 난 여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며 철회할 마음이 없다네. (중략) 인간의 기원에 대한 나의 신념을 강요할 생각은 추호도 없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의견을 드러내지 않고 꽁꽁 숨기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하네. 물론 누구나 인간이 경이롭게 분리된 존재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네. 내 자신이 그 필요성이나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고 해도 말일세.”

찰스 다윈(1809~1882)이 1860년 1월7일 친구이자 곤충학자인 레너드 제닝스에게 보낸 편지다. 이에 앞서 제닝스는 같은 해 1월4일자로 다윈에게 보낸 편지에서 “인간이 가진 논리력이나 윤리적인 지성이 아무리 점진적인 변화를 거치고 그 능력을 획득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던 간에 원래 이성이 없던 조상이 자연선택적으로 획득한 것이라는 이론 역시 쉽게 수긍할 수 없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다윈은 답신에서 제닝스의 이 같은 의문에 단호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힌 것이다.

책은 다윈이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서간집이다. ‘기원’ 편은 1822년부터 ‘종의 기원’이 출간된 1859년까지의 편지를 모았으며, ‘진화’ 편은 1860년부터 1870년까지 주고받은 편지를 보여준다.

다윈은 끊임없이 편지를 썼다. 학교를 다닐 때나 비글호 항해를 떠났을 때 그는 누나를 비롯해 가족들에게 계속 편지를 써서 자신의 근황을 알리고 안부를 물었다. 평생에 걸쳐 사귄 폭스나 후커는 일상사부터 학문적 탐구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것을 논의할 수 있는 상대였다. 스승 라이엘이나 경쟁자 월리스, 추종자 헉슬리는 좋은 동료로서 편지를 통해 다윈의 학문적 동반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이 밖에도 다윈은 무수한 친우들에게 자료를 요청하고 질문을 던졌으며, 독자들로부터의 편지에도 답장을 썼다.

편지들에서 드러나는 다윈의 모습은 다채롭기 그지없다. 대학 공부에는 실망하면서도 자연에 매료된 자연사학자인가 하면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의 지지를 필요로 하는,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는 청년 다윈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예의 바르면서도 거절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자신을 도울 것을 부탁하는 외골수 자연사학자의 모습이 있는가 하면 친구에게 자식들의 장래에 대한 걱정을 털어놓는 평범한 가장 다윈도 볼 수 있다.

한편 학자로서의 다윈은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이론에 대해서 확신을 드러내는가 하면 자신의 저서를 출간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조심스럽게 묻는 신중한 모습도 보여준다. 자칫 경쟁자에게 선점의 명예를 뺏길까 신경이 곤두선 모습을 드러내곤 후회하기도 하고, 어느새 자신의 명성과 성취로부터 얻은 자부심을 감추지 않는 대가가 되어 있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다윈은 늘 새로운 연구와 집필 기획을 이야기하는 열정적인 탐구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소한 일화에서부터 진지한 논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화제들이 뒤엉켜 있는 편지모음집이 전혀 지루하지 않은 것은 다윈의 역동적인 삶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는 점에 기인하는 것이지만 아울러 다윈의 문필력 덕분이기도 하다. 상대와 내용, 시기와 목적에 따라 달라지는 문체와 태도는 서간 문학의 모범적인 사례라고 할 만하다.

독자들은 이 서간집에서 자신의 반대자에 대한 신랄한 평과 조롱, 지지자와 가족에 대한 애정이 배어 나오는 다정한 안부, 예의 바른 정중함과 동시에 재기 넘치는 농담도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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